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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용의 화식열전] 파월의 ‘더 올릴 결심’…시장은 ‘안 믿을 결심’
뉴스종합| 2022-12-16 11:22

3세기 중국은 진(晉)나라 때로, 위촉오(魏蜀吳) 삼국이 하나로 모아지던 난세다. 세상을 등지고 은거한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완적(阮籍)이란 사람이 있었다. 명문가 출신으로 책을 많이 읽고 술을 좋아했으며 거문고 연주의 달인이었다. 그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한 이유는 청안(靑眼·눈동자)과 백안(白眼·흰자위)을 자유자재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는 검은 눈동자와 흰 자위 두 가지 눈으로 사람을 만났을 때 그가 마음에 드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표시할 수 있었다. 완적이 입으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하지 않아 사마소(司馬昭·진 태조 무황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지만 호불호(好不好)에 대한 표현은 분명했던 셈이다. 세상을 등져서 ‘죽림칠현’이지만 이들 대부분이 높은 벼슬을 받았다. 현명하다고 해도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인간 본성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글로벌 시장참여자들이 제롬 파월을 ‘백안’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년 금리인하 가능성을 일축한 데에 대해 ‘못 믿겠다’는 반응이다. 2021년 내내 “인플레이션 일시적(transitory)”이라던 파월의 오진(誤診)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파월은 내년 성장 전망을 크게 낮추고도 “경기침체는 아니다”고 했지만 이 역시 ‘오진’이라는 게 시장참여자들의 진단이다.

시장에 따른 반응도 엇갈린다. 대중이 참여하는 주식시장은 연준의 추가 긴축 가능성을 반응하며 가격이 하락하는 모습이다. 긴축으로 불황이 깊어지면 기업들의 실적 둔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면 전문가집단이 가격을 결정하는 채권은 오히려 가격이 상승(금리 하락)하는 모습이다.

파월 입장이 돼보자. 미국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는 연준 의장은 폴 볼커다. 인플레이션과 싸워서 이겼고 ‘레이거노믹스’로 연결시켜 경제회복까지 이뤄냈다. 4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맞은 연준을 맡은 파월도 볼커 못지않게 잘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물가만 잡는 긴축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긴축에도 경제를 심각한 침체에 빠뜨리지 않는 데에 있다.

12월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문을 보면 꽤 단호하다. 하지만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파월의 말들을 보면 모호하다.

“그동안 빠르게 금리를 인상해 정책 기조가 상당히 제약적인 상황이다.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 해야 할 일은 더 느린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동안 정책금리를 얼마나 인상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탐색해가며 최종 정책금리 수준에 다다르고 그 과정에서 직면할 위험 간 균형도 보다 잘 맞춰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느린 속도’ ‘최종 수준’ ‘직면할 위험’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끝이 보이면 속도를 높일 수 없는 법이다. 긴축의 끝에서 기다리는 불황의 충격도 최소화해야 한다. 내년 2월 연준의 인상폭이 중요하다. 0.25%포인트면 내년 기준금리 상단은 5%를 넘지 못할 수 있다.

이익집단인 시장참여자들로서는 거의 모든 자산에서 올해 내내 상당한 투자 손실을 본 만큼 내년에는 이를 만회하고 싶을 게 뻔하다. 그러려면 연준이 긴축을 멈춰야 한다. 연준에 ‘백안’인 이들이 불황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경제지표에는 ‘청안’인 이유다. 이들과 연준 가운데 누가 옳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통화정책의 칼자루를 쥔 쪽은 파월이란 점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억지로 보려고 해봐야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긴장을 높이고 한발 한발 조심조심 옮기며 변화하는 상황에 그때 그때 잘 대응하는 게 낫다. 밖으로는 물가와 경제지표 추이와 그에 따른 중앙은행들의 반응 그리고 코로나19 방역 봉쇄를 푼 중국 경제의 방향을 잘 살펴야 한다. 안으로는 역시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가 핵심이다.

미국의 긴축이 약해지거나 끝이 나면 달러 강세가 진정되며 외환시장도 안정을 찾게 된다. 원화 약세에 따른 수입물가 부담만 줄어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명분은 약해질 수 있다. 한미 금리 역전 심화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글로벌 자금이 금리만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가 많은 장기채에서는 한미 간 금리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미국의 긴축이 기대보다 오래가거나 더 강해지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원화는 역외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환율 변동폭이 더 클 수 있다. 한미 금리 역전보다 가파른 환율상승에 외국인 자금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이는 다시 원화가치를 더 떨어뜨리게 된다. 한은도 금리를 더 올리지 않기 어렵게 되고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가 동시에 터질 가능성이 커진다.

다들 미국만 바라보고 있지만 중국도 잘 살펴야 한다. 올해 우리 경제나 증시가 다른 나라보다 유독 더 어려웠던 이유도 중국 때문이다. 중국 경제가 코로나19 방역으로 봉쇄되면서 소비와 생산이 멈췄고 우리 수출과 무역이 급감했다. 중국이 방역 봉쇄를 풀고 있지만 경제회복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감염자 확대로 또 다른 차질이 계속될지 예측이 쉽지 않다. 이 역시 대응이 중요하다.

외환위기(1995~1997년) 이후 코스피는 2년 이상 연속 하락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도 2008년에 그쳤다. 미국도 IT버블(2000~2002년) 이후로는 2년 이상 연속으로 증시 하락은 없었다. 통신의 발달로 정보 비대칭이 완화되면서 자산시장이 주요한 경제 변화를 그때 그때 가격에 잘 반영하고 있어서다. 지나친 낙관도 경계해야 하지만 막연한 불안도 위험하다.

주요 증권사들의 내년 전망을 보면 코스피 변동 범위는 2,000~2,700 선이다. 상반기에는 2,000 선에 가까웠다가 하반기로 갈수록 2,700 선에 가까이 가는 시나리오다. 주식시장은 미래를 반영한다. 2024년이 2023년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다. 주가는 실적과 유동성(금리)의 함수다. 가장 가까이로는 2월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폭이 0.25%포인트일지, 0.5%포인트일지가 중요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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