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도제 기자]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이 일주일 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의 내용이 당초 입법 취지에서 대폭 후퇴했다는 평가를 내놓으면서 법 개정 및 보완 요구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과잉입법 등의 위헌 소지로 대한변호사협회가 제기한 헌법소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울러 내년 9월 시행에 필요한 세칙을 만드는 과정에도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자회견에서 김 전 위원장은 2012년 8월 제출한 입법예고 원안과 정부 제출안(2013년 8월)도 없던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가 포함된 것과 관련해 적용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빨라졌고 적용 방식에 대한 사회적인 협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과잉입법이나 비례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놨다.
또 법안이 국회를 거치면서 공직자 가족 범위가 배우자로 좁혀지고 부정청탁의 개념이 축소하는 등 원안에서 후퇴한 부분과 이해충돌방지 법안이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법률적인 미비점에 대해 우려를 표시함에 따라 관련 내용의 수정 및 보완이 불가피해졌다. 김 전 위원장은 또 100만원 이하 금품수수시 직무관련성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서도 당초 원안이 후퇴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법안을 최초 발의한 김 전 위원장의 아쉬움이 섞인 뼈아픈 지적이 제기되면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김영란법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여론에 밀려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진 여야 정치권이다. 과잉입법, 졸속입법, 감정입법 등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입법 취지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법을 통과시켰으나, 김영란 전 위원장이 부족한 부분을 지적한 상황에서 손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법을 합의 처리한 여야 지도부는 위헌소지 등의 문제 지적에도 불구하고 법 원안에 손을 대기보다 시행령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이 국회 통과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다수 표시하고 비난 여론이 비등하면서 가뜩이나 누더기 법안으로 지적받는 김영란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은 관련 법 처리 다음날 “가능하면 4월 국회 전에 김영란법 개정안을 발의하려고 한다”며 “문제점이 부각되고 이슈가 됐을때 동력이 생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진다”고 말했다.
사립학교 교직원이나 언론사가 포함된 것과 관련해 정치권은 논의를 확대하기보다는 위헌 소송 등의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 적용 대상의 민간 영역 확대와 관련한 논란을 제외하고 법 시행 시점이 1년 6개월로 바뀌고 선출직 공무원들이 법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든 부분 등 다양한 부분의 법률 미비점이 지적되면서 각계의 법 개정 요구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자유경제원은 ‘김영란법’ 관련 국회입법쟁점 정책제안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헌법의 원리를 위배한 과잉 입법”이라고 지적했고, 위헌 요소가 포함된 김영란법에 대해 대통령은 국회에 재의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앞서 한국교총도 김영란법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 요구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김 전 위원장의 평가는 법 시행을 위해 대통령령을 만들어야 하는 국민권익위원회의 후속 작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법률 안착 과정에서 2차 혼란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김 전 위원장의 지적을 감안한 꼼꼼한 세칙 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