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명 동시 투약 가능한 필로폰 밀수 일당 검거
초콜릿 포장으로 단속회피… 고령 외국인 ‘지게꾼’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나이지리아에 거점을 두고 해외 마약상들과 연계해 국내에 20만명이 동시에 투약가능한 필로폰(약 6㎏)을 밀반입한 해외 마약 총책과 운반책, 국내 유통책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마약을 밀반입하기 위해 초콜릿 포장지로 필로폰을 감싸고, 고령의 외국인을 마약 운반책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21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 사범 총 18명을 특정 범죄 가중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하고, 이중 운반책 등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국내에 들여온 필로폰은 무게 6.15kg, 시가 200억원 상당이었으며 20만명이 동시에 투약 가능한 규모다.
사건은 3년 전인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총책 A(57) 씨는 나이지리아에 있으면서 해외 메신저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나이지리아의 조직원과 국내 마약상과의 거래를 연결시켜왔다. A씨는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3건의 필로폰·대마 밀수 사건도 지시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확인됐다. 지난해 해외 3개국을 연계한 76명의 마약조직을 검거해 필로폰 18.7kg을 압수한 사건이다.
검거 과정은 특수작전을 방불케 했다. 올해 3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나이지리아 마약상이 국내에 필로폰을 유통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4월엔 멕시코에서 필로폰 3kg을 받아 영국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뒤 호텔에 숙박 중이던 스웨덴 국적의 운반책을 긴급체포 했다. 경찰은 필로폰을 건네받기 위해 위장거래 현장에 나온 나이지리아인 국내 유통책, 한국인 유통책도 순차적으로 검거했다.
공범자의 휴대전화 포렌식, 폐쇄회로(CC)TV 분석 등 종합적인 수사를 통해 지난해 12월 필로폰 2kg을 밀수한 남아공 국적의 운반책도 특정해 지난 7월 국내 입국 시 검거했다. 지난 10월 필로폰 3kg을 밀수한 캐나다 국적의 운반책도 검거했다. 나이지리아 마약 총책은 인터폴 적색수배 중이다.
이번에 경찰에 붙잡힌 유통책들은 모두 고령의 외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지리아 마약 조직은 온라인에서 접촉한 노인에게 한국에서 대출이나 투자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유인한 후, 국내 관계자에게 선물을 전달해 달라고 제안하는 방식으로 마약류를 운반하게 했다.
경찰에 검거된 스웨덴 국적의 운반책(62)은 복권 당첨금 수령을 목적으로, 캐나다 국적의 운반책(78)은 투자 대출을 받을 목적으로, 남아공 국적의 운반책(71)은 UN 후원금 관련 계약을 목적으로 국내에 입국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는 마약류가 은닉된 물건을 전달하는 일만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마약을 은닉하기 위해 여러 수법도 동원됐다. 멕시코시티에서 들여온 필로폰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멕시코 초콜릿의 포장지를 벗겨 내용물을 같은 무게와 모양의 필로폰 덩어리로 교체한 후 다시 초콜릿으로 개별 포장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밀반입한 필로폰은 배낭의 등판 부분을 뜯어내고 그 안에 진공 포장된 필로폰을 넣어 다시 밀봉, 배낭이 들어가는 여행용 캐리어 안에는 마약견 탐지를 방해하기 위해 커피 가루를 골고루 살포했다.
경찰은 “모르는 외국인이 이메일이나 해외 메신저를 통해 접촉하는 경우 예외없이 중대 범죄와 관련이 있으므로 현혹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사건에 연계된 국내 마약상, 총책 A씨의 국내 조직원 등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