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포레스트 - 등검은 말벌의 침입]
따뜻해진 날씨로 '살기 수월한' 온도 조성돼
전국 농가의 91.6% “등검은말벌 피해 봤다”
퇴치 쉽지 않아, 일선 현장선 '끙끙' 속앓이
기후변화 문제 심각, 양봉산업 생태계 자체 휘청
재앙은 미묘하게. 처음엔 잔물결처럼 찾아왔다. 2000년대 초반 '못보던' 검은색 잽싼 말벌이 부산지역 양봉농가에 출몰했다. 처음에는 한 두 마리. 그러나 이내 그 숫자가 해일처럼 불어났다. 수 백, 수 천 마리가 농가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다른 말벌과는 사냥 습관이 달랐다. 다른 말벌은 우선 벌집에 앉아 사냥감을 무는데, 새로운 말벌은 비행상태에서 꿀벌을 낚아챘다.
온화해진 날씨는 신종말벌이 전국으로 퍼지는 자양분이 됐다. 양봉 농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피해는 점차 커졌고, 해결책은 뚜렷하지 않았다. 학계는 신종 말벌에게 '등검은 말벌'이란 이름을 붙였다. 환경부는 지난해 7월 등검은 말벌을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등검은 말벌이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시점과 장소는 2003년 부산 영도. 실제 국내 상륙은 더 이른 시점이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본다. 등검은 말벌은 중국에서 왔다. 연구자들이 국내에 출몰한 등검은 말벌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중국 저장성의 등검은 말벌이 국내 등검은 말벌의 뿌리인 것으로 확인됐다.
헤럴드경제는 등검은 말벌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10월 부산, 경남, 전북 등지의 양봉농가를 찾았다.
등검은 말벌과의 사투
"직접 피해를 입은게 벌써 15~16년은 됐습니다. 그런데도 대응법이 뚜렷하지 않아요. 이게 워낙 민첩성이 강하다 보니까."
백현 양봉협회 부산 지회장은 등검은 말벌의 등장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한 마리, 두 마리 찾아온 검은색 말벌이 꿀벌을 잡아가니까. 저게 뭔가 싶었지. 이게 사냥하는 방식이 희한하거든."
등검은 말벌의 가장 큰 문제는 '독특한 사냥방식'에 있다. 등검은 말벌은 '비행하며 사냥'을 한다. 이에 '앉아서 사냥하는' 다른 말벌에 특화된 덫들은 등검은 말벌에게 잘 듣지 않는다. 최근 나온 대(對)등검은 말벌 퇴치기구는 등검은 말벌 말고도 꿀벌과 다른 곤충까지 잡아들여서 문제다. 등검은 말벌은 농가가 앞서 말벌을 잡아왔던 도구인 '끈적이'에는 달라붙지 않았다.
직접 벌을 낚아챌 '잠자리채'가 그나마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다. 양봉업자들은 잠자리채를 들고서 등검은 말벌을 잡았다. 오전 6시 해 뜰 때부터, 오후 6시 해가 질 때까지. 일손이 부족하면 아내와 자식들이, 이웃사촌까지 나와서 함께 등검은 말벌을 잡아야만 했다. 손놓고 있으면 모든 꿀벌이 죽게 될 테니까. 어깨 탈구가 오고, 기진맥진해져도 양봉업자들은 잠자리채를 휘둘렀다. "제발 그만 좀 와라" 속으로 한숨과 기도를 섞어가면서...
이서우 양봉협회 경남 지회장도 등검은 말벌 하면 혀를 내두른다. "엘보(팔꿈치) 나간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고. 봄에 벌집일을 하고 나면, 여름에는 쫌 쉬기도 하고 마 해야 되는데. 등검은 말벌 잡을라고, 양봉업자들 죄다 파리채 들고 서 있어."
아울러 등검은 말벌이 다른 집단군에 비해 숫자가 많은 것도 문제가 된다. 양봉업자들 입장에선 '이골이 날 지경'이었단다. 검은색 등검은 말벌의 그림자라도 보일 때면, 양봉업자들은 분노와 스트레스에 치를 떨었다. 어느샌가 등검은 말벌에겐 별명도 생겼다. '꿀벌 포식자'. 수천 수백마리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벌통을 찾아와 꿀벌을 낚아채가자 붙여진 것이다.
이서우 양봉협회 경남 지회장은 등검은 말벌집을 찾아갔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찔했다고 말한다.
"등검은 말벌집은 거짓말 안하고 집이 사람만해. 정말 그만하다고. 우리가 아는 토종 말벌들은 개체수가 집 하나에 3000마리 남짓인 것 같은데, 등검은 말벌은 마 한 3만 마리는 된다고."
등검은 말벌은 현재 전국에서 출몰하고 있다. 수도권, 백두대간 일부 고산 지역에서만 '아직까진' 등검은 말벌이 드문 편이다. 대한민국에서의 등검은 말벌 확산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유독 속도가 빠르다. 유럽에서는 등검은 말벌의 대표적인 피해국가가 프랑스다. 프랑스에서의 해마다 화산 속도는 12.4km/yr(year,년). 한국에서는확산속도가 67.3km/yr에 달한다. 5~6배 가량 빠른 속도다.
양봉 농가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정철의 안동대 교수 연구팀이 2018년 200군 이상의 꿀벌을 사육하는 양봉농가 1783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해 등검은 말벌에 의한 꿀벌 피해율은 24.3%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 농가의 91.6%가 등검은 말벌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나왔다.
연구결과 등검은 말벌로 인한 직접 피해액은 매년 17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반도에 어떻게 적응하게 된 걸까?
최근 온화해진 한반도 기후는 등검은 말벌이 '번식력'이란 무기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또 온화해진 날씨는 봄에서 가을 서리가 오기전까지 등검은 말벌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전라북도 임실의 양봉업자 최경석(64) 씨는 이에 큰 불만을 제기했다. "이놈들(등검은 말벌)은 서리가 와도 계속해서 와요. 아주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고, 계속 추위가 오면 그때서야 안오지. 벌통 놓고 월동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등검은 말벌과 싸우는 거야."
전문가들은 등검은 말벌의 확산을 우려한다. 등검은 말벌 연구자인 김동원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사도 마찬가지다.
"최근 날씨가 온화해지면서 등검은 말벌에 있어서도 더욱 발육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어요. 앞으로 개체수가 더 빨리 많아질 수 있습니다."
등검은 말벌 권위자인 정철의 국립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도 같은 우려를 내비췄다. "등검은 말벌은 아열대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원래 따뜻한 지방에 잘 적응했던 생물이죠. 한반도는 지난 100년간 평균온도가 1.8도에서 2.1 도 정도 이제 상승했습니다. 한반도가 등검은 말벌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된 셈입니다."
생태계에서 등검은 말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늘어가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정철의 안동대학교 교수팀이 지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간 진행한 ‘전국 말벌 실태조사 결과, 2018년 포획된 말벌의 단 49%만을 차지했던 등검은 말벌 비율은 2019년에는 72%까지 증가했다. 말벌 포획 비율은 2018년 등검은 말벌 49%, 말벌 19%, 장수말벌 11%, 꼬마장수말벌 9% 순. 2019년은 등검은 말벌 72%, 장수말벌 8%, 좀말벌 6%, 말벌 5% 순이었다.
따뜻해진 봄 날씨, 갑작스런 4월 한파도 꿀벌 공격
올해는 유독 꿀 생산량이 떨어졌다. 등검은 말벌의 피해와 함께, 전국적으로 심각한 이상기온이 닥쳐와 꿀벌들이 제대로 채밀을 못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올해 벌꿀 생산량(아카시아, 야생화, 밤꿀 생산량 합계)은 전국적으로 8000 톤에 그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전국에서 생산된 벌꿀은 7만9099톤, 2018년에는 3만3137톤, 2017년에는 7만3039톤이었다.
4월달 전국에 찾아온 '기습 한파'와 함께, 전체적으론 온화져버린 한반도의 '봄 날씨'가 골고루 영향을 미쳤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봄 날씨가 따뜻해지면,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개화를 한다. 꽃이 피는 시기 달라야 벌들이 딸 수 있는 꿀도 늘어난다. 꽃이 한 번에 피면 벌들이 꿀을 딸 시간도 줄어들게 된다. 이를 '동시개화성' 문제라고 한다.
"4월 달에 전국적으로 추위가 찾아왔여요. 아카시아꽃이 이제 정상적으로 개화 하지 못했죠." (김동원 박사)
"최근 봄철에 온도상승이 심하면서 꽃들이 한번에 피는 현상이 늘고 있어요. 이 경우 꿀벌들이 나무를 이동하면서 채밀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죠." (정철의 교수)
심각한 기후변화, '꿀벌도 알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종합해 '기후 불확실성의 증가'라고 말한다. 사계절 24절기가 뚜렷해, 예측이 가능했던 한반도 기후가 이제는 제대로 예측하기 힘든 환경이 되고 있다고 했다.
먹이사슬 말단에 위치하는 꿀벌은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다. 해마다 늘어가는 꿀벌 관련 피해는 이를 방증한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 따르면 2020년 9월까지 양봉과 관련돼 지급된 보험금 액수는 56억2520만원에 달했다. 보험금 지급액수는 해마다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5225만원에 지나지 않던 양봉관련 보험금 지급액수는 2017년에는 8936만원 2018년에는 59억9387만원 2019년에는 71억1439만원까지 치솟았다.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2016년 보고서 '수분 및 수분매개체 평가서'를 통해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이 먹는 곡류 전반에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거 50년 동안 벌 개체 수의 37%가 감소했고, 2.8%의 벌 종이 '멸종위기', 1.2%의 벌 종이 멸종 위협에 놓여 있다고 봤다.
꿀벌은 양봉산업 뿐만 아니라, 식물 생태계를 지탱하고, 더 나아가 먹이 사슬을 유지하는 뼈대다. 자연계에 있는 90%의 식물이 화분매개에 의존해 번식을 하고, 초식동물들은 그 식물을 먹고 살아간다. 인간들도 꿀벌이 화분매개한 식물들을 먹고 살아간다.
화분매개를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농업생산액은 연간 6조원 규모에 달한다. 대한민국 한해 작물 생산액 24조원의 25%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이런 피해는 결국에는 인간에까지 이를 수밖에 없다.
정철의 교수는 현재 꿀벌이 받고 있는 타격은 기후변화가 그만큼이나 심해졌다는 증거가 된다고 봤다.
"기후 변화로 인해 생물이 영향을 받는 것은 기후변화가 어느정도 누적됐을 때서야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기후변화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라스트 포레스트 : 꿀벌 의문의 떼죽음 계속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