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K-POP)과 함께 한류의 대표주자로 ‘한식(韓食)’을 꼽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뉴욕타임스 선정 뉴욕 10대 레스토랑에 한국음식점이 5위에 선정되고, 전 세계 유명 식당들의 별점을 매기는 ‘미슐랭 가이드 레드북’에 해외 한식당 6곳이 별점을 받았다는 것은 한식 한류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증명이다.
나는 외국친구들에게 한나라의 음식이 세계인에게 사랑받으려면 그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의 역사가 최소 천년은 넘어야 한다고 자랑 반 농담 반으로 이야기한다.
자본시장에서도 ‘금융한류’는 중요한 이슈다. 한국 금융회사들의 해외진출과 함께 동남아시아 지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한국의 금융투자시스템을 배우기 위한 문의가 줄 잇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예탁결제원도 지난해 인도네시아 예탁결제기관에 증권대차·Repo시스템 개발 기술자문과 시스템을 수출한 데 이어 올해에도 50만불 규모의 펀드거래지원시스템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러한 금융투자시스템의 한류 바람에 비해 우리 증권시장의 대표적인 투자상품인 ‘펀드’의 세계화는 아쉽게도 제자리걸음이다.
펀드는 복잡하고 다양한 금융기법의 결합체다. 따라서 각국의 펀드산업 수준은 그 나라 금융역량의 측정 수단이 되기도 한다. 국내 펀드산업이 총액기준 세계 13위 규모이고 국내 투자자의 해외펀드 투자규모가 9500억원에 달하지만 아직 국내펀드가 해외에서 직접 판매된 사례는 없다.
자본시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펀드의 ‘수입편향’은 한국 펀드산업의 세계화를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정부는 최근 펀드산업의 세계화 지원정책을 추진하며 국내 펀드산업의 글로벌화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자산운용회사의 NCR(Net Capital Ratio : 영업용순자본비율) 규제 폐지를 통한 해외진출 지원 및 정부 차원의 아시아펀드패스포트 논의 참여 등이 그 예다.
한편 올해로 오픈한 지 10년이 지난 예탁결제원의 펀드넷(FundNet)은 국내 유일의 펀드시장 후선업무(Back-office)지원 시스템으로 연간 687억원(2013년 기준)의 사회경제적인 비용 절감효과를 자산운용회사, 증권회사, 은행 등 펀드시장과 관계된 모든 금융기관이 함께 누리고 있다.
예탁결제원은 바로 이 펀드넷을 활용한 국내펀드의 해외수출 지원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 검증된 효과적인 펀드투자 네트워크를 해외투자자를 대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필자는 지난 해 10월 중국 시안(西安)에서 개최된 제18차 ACG(Asia-Pacific CSD Group : 아태중앙예탁결제기관협의회) 총회에 참석해 아시아 지역내 펀드거래 표준화 논의를 위한 회의체(AFSF : Asia Fund Standardization Forum) 출범을 제안했다.
홍콩과 인도를 포함해 여러 나라가 현장에서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내비쳐 현재 실무협의가 한창 진행중이다. 2015년 ACG총회에서 성공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국내 펀드상품과 금융시장 지원시스템의 동반 해외진출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국내 펀드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미국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국내 펀드시장은 아직도 회복 중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펀드산업 재도약의 원동력을 해외시장에서 찾아보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한국식당이 해외에서 자연스레 현지 손님을 맞듯이, 또는 국내 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해 해외상품을 손쉽게 직접 구입하듯이, 해외 금융기관에서 국내 펀드 상품의 요모조모를 따지고 거래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자산운용업계와 정책당국, 그리고 예탁결제원이 힘을 모은다면 멀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