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공격, 변호인의 항변.
원고의 주장, 피고의 반격.
엎치락뒤치락 생동감 넘치는 법정의 풍경을 전합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지난 1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4개 재판 중 1개 재판의 1심 결론이 나왔습니다.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이대로라면 이 대표는 10년간 선거에 나갈 수 없습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유포 혐의 1차전은 검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특히 ‘백현동’ 관련 부분은 검찰의 완승입니다. 이 대표 측은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습니다. “사실관계부터 인정할 수 없다”면서요.
검찰과 이 대표의 주장, 법원의 판단까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이재명 ‘백현동 허위 발언’ 살펴보니
가장 먼저 쟁점이 된 것은 발언에 대한 ‘해석’입니다. 문제가 된 발언을 일반 국민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두고 검찰과 이 대표의 주장이 엇갈렸습니다.
먼저 ‘백현동 발언’이 나온 맥락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대표는 2010년 7월 제19대 성남시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당시 한국식품연구원이 위치한 백현동 부지의 용도는 자연녹지 또는 보전 녹지 지역이었습니다. 주거시설을 지을 수 없는 일종의 ‘개발제한 구역’이었던 셈입니다. 백현동 부지가 쉽게 매각되려면 사업성이 좋은, 쉽게 말해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바뀌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남시 도시기본계획’ 변경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백현동뿐만 아니라 성남시 일대 여러 공공기관 부지 매각이 지연됐습니다. 백현동 부지 용도가 바뀐 것은 2015년 9월입니다. 이를 두고 2017년부터 꾸준히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20대 대선이 한창이던 2020년 10월 국정감사 자리에서 문제의 발언이 나옵니다. 최대한 원문 그대로 실어보겠습니다.
2021년도 경기도 국정감사(21.10.20)
이재명(당시 경기도지사) ⓛ식품연구원은 성남시 공공기관 이전 5개 대상지 중의 하나였습니다. (중략) 당시에 제가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토지 용도변경을 해 가지고 분양 수익을 수천억씩 취득하는 것은 성남시로서는 허용할 수 없다. 반드시 성남시는 일정한 수익을 우리가 확보하고 주거단지가 아니라 업무시설을 유치하겠다. 이렇게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②그런데 국토부에서 저희한테 다시 이런 식으로 압박이 왔는데 공공기관 이전 특별법에 보면 43조 6항이 있다. (패널을 들어 보이며) 국토부 장관이 도·시 관리계획 이것 변경을 요구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반영해야 한다. 의무조항을 만들어 놨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만약에 안 해주면 직무 유기 이런 것을 문제 삼겠다고 협박을 해서 제가 그때 낸 아이디어가 뭐냐 하면 반영은 해 주는데 다 해 주라는 말은 없으니까 조금만 반영해 주겠다. 이렇게 다시 기자회견을 해서 이것 사셔도 건축허가 안 해 줍니다, 요만큼만 해 줍니다, 요만큼만 바꿔줍니다 해서 사실은 성남시 공공기관 이전부지 다섯 곳 매각이 몇 년 동안 불발됐던 거예요.
③백현동 이 부분은 그냥 아파트 분양하겠다고 해서 저희가 해주지 말라고 버티다가 결국 다시 또 국토부가 식품연구원에 대해서만 별도의 공문을 보냈습니다. 뭐라고 보냈느냐 하면 종전 부동산 활용 용도 제한 등으로 매각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니까 애로사항 해소를 위해서 적극 참여해라. 도시계획 규제를 해제하고 발굴해라. 이런 지시 공문이 다시 와서 저희가 불가피하게 용도는 바꿔 주는데 그냥은 못 해 주겠다. 공공기여를 할 것을 내놓으라고 해서 저희가 약 8000평 정도 R&D 부지를 취득했습니다.
국정감사 발언에 언급된 ‘의무조항’이란 혁신도시법 제43조 6항을 말합니다. 공공기관이나 지방공기업이 매입한 공공기관 부지에 대해 도시·군 관리계획 변경을 요구할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대표는 정부가 성남시에 혁신도시법 의무조항을 근거로 공공기관 부지 매각이 쉽게 되도록 성남시 기본계획을 바꿀 것을 요구했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직무유기 등 방식으로 문제 삼겠다고 압박했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습니다.
검찰은 국정감사 발언을 이 대표가 ‘국토부가 성남시 공무원들을 협박해 백현동 부지 용도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성남시가 자체적으로 결정 해놓고 의혹이 제기되자 박근혜 정부에게 책임을 돌렸다고 지적합니다.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결심공판(24.09.20)
검사 나쁜 짓을 하던 아이가 어느 날 부모에게 걸렸습니다. 혼날 것이 두려운 아이는 다른 친구의 핑계를 댑니다. 또는 선생님 탓을 합니다. 이를 위해 아이는 친구나 선생님과 사이에 없었던 여러 일들은 지어냅니다. 당시 집권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였던 피고인(이재명)의 범행이 이와 같습니다.
(중략) 마치 부모에게 걸린 아이처럼 비난의 화살을 돌릴 제3자가 필요했습니다. 제3자는 바로 박근혜 정부의 국토부였습니다. 의혹이 중대했던 만큼 일반국민이 호도될 만한 특별히 구체적인 사실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피고인은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국토부의 단순 협조공문이 아니라 본건 직무유기 협박, 의무조항 등을 대외적으로 공개했습니다. 피고인은 ‘협박’이라고만 발언한 게 아닙니다. 관련 당사자의 발언, 법조항, 협박의 태양까지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발언했습니다. 본건 의무조항을 적용했다는 사실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국민들이 호도될 만한 예상치 못한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반면 이 대표는 ‘검찰의 짜깁기’라고 주장합니다. 혁신도시법 의무조항 언급이나 ‘국토부 협박’ 발언은 백현동을 특정해서 말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 대표는 지난 결심공판에서 “수년간 복잡했던 일에 대해 7분 안에 답변해야 했다. 압축적으로 하다 보니 이야기가 꼬인 적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대표 측 변호인인 이승엽 변호사는 최후 변론을 통해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①은 2011년 8월 기자회견 ②는 2013년 언론인터뷰와 관련한 내용으로 백현동 부지뿐만 아니라 당시 성남시에서 문제가 됐던 여러 공공기관 부지 매각과 관련된 언급이었다는 것이지요. 백현동 관련 사안은 ③에서부터 특정이 되는데 검찰이 여러 시점의 이야기를 잘라내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에 ‘국토부 협박’, ‘의무조항 적용’이 있었다”고 발언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기소했다는 겁니다.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결심공판(24.09.20)
이승엽 변호사 피고인의 발언은 시간적, 인과적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검사는 ‘의무조항 협박’을 연결해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과 관련해서 행해진 거야’라고 이야기하는데, 올바로 이야기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중략) 의무조항 이야기는 쏙 빼놓고 법률에 의한 요구, 협박 이야기를 쏙 따와서 백현동 부지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협박받은 것처럼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 이야기는 백현동 관련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의무조항과 협박 이야기가 나온 후에 “팔리지 못했어요”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의무조항과 협박에 대한 나(이재명)의 대응은 “일부만 해주겠다”여서 안 해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빼놓고 의미가 통하는 것인지, 과연 피고인이 한 말을 올바르게 해석해서 공소사실로 삼은 것인지 자세히 살펴봐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1심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부장 한성진)는 “백현동 발언이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검사가 발언을 임의로 발췌하고 위치를 재배치해 전체적 맥락을 왜곡하고, 짜깁기 편집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법원 ‘유죄’ 결정적 근거 된 국토부 답변
다음으로는 해당 발언이 ‘허위사실’인지 여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대표는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에 대한 국토부의 ‘압박’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협박’이라는 표현이 과장된 측면은 있을지언정, 성남시가 국토부의 압박에 못 이겨 용도를 변경해 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검찰은 이 대표의 주장이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합니다. 재판에서 무려 22명의 성남시 공무원이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하나같이 “협박, 압박은 없었다”고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결심공판(24.09.20)
검사 (직무유기로 협박을 받았다는) 공무원의 소속을 모르고, 특정하지도 못한 점을 재판에서 확인했죠?
이재명 당시 공무원들 스트레스는 객관적으로 분명합니다. 중요한 국책사업을 두고 (정부와 성남시가) 부딪혔을 때 공무원들이 얼마나 압박을 받았을까요. 내심 ‘시장이 양보해라’ 이런 지적, 권고, 하소연이 있었습니다. (중략) ‘전혀 아무런 압박이 없었다’고 증언하는데, 이게 진실일까요?
검사 22명 성남시 공무원들이 일치단결해서 피고인을 음해할 이유가 있나요?
이재명 검찰이 무서웠겠지요.
이 대표는 성남시 공무원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증언하지 않은 이유는 검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성남시 도시계획과장이었던 증인 A씨에 대해서는 검찰이 ‘불기소’를 조건으로 회유했다는 취지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법원의 판단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2014년 11월~12월 성남시와 국토부 간에 오갔던 ‘공문’입니다. 2014년 11월 성남시는 국토부에 질의 사항을 보냅니다. 앞서 한국식품연구원의 2014년 4월, 9월 용도변경을 요청하고 국토부가 2014년 5월, 10월 각각 보낸 ‘종전부동산 매각 관련 협조 요청(한국식품연구원)’이라는 제목의 공문에 대한 해석을 요청합니다. 국토부가 보낸 공문이 혁신도시법 의무조항에 따른 것이냐는 문의였죠.
그런데 2014년 12월 국토부가 “매각 관련 협조 요청문서는 혁신도시법 제43조 제3항 내지 제6항에 따른 사항이 아니다”라고 답변을 보냅니다. ‘의무조항’에 근거한 협조 요청이 아니라는 걸 명시한 겁니다. 또 식품연구원 요청에 따라 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이 가능하냐는 질의에 대해서는 “용도 지역 변경은 가능하다. 다만 성남시가 ‘적의 판단’해야 할 사항”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판결문(24.11.15)
국토부는 2014.12.9 자 공문에서 이전 국토부의 협조요청이 의무조항에 따른 것이 아님을 명백히 했다고 판단된다. 또한 국토부의 2014.5.21.자 공문과 2014.10.1자 공문에 용도지역 변경 등에 대한 적극적 협조, 지원 요청이 기재되어 있으나 준주거지역 등 구체적인 용도지역이 기재되어 있지는 않고, 2014.12.9.자 공문에도 구체적인 용도지역을 특정하지 않은 채 용도지역 변경이 가능하다고만 회신하였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재판부는 “백현동 부지에 대한 준주거지역으로의 용도 지역 변경은 성남시의 자체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성남시장인 피고인이 스스로 검토해 변경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성남시의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별도 재판을 받는 이 대표에게 특히 불리한 대목입니다.
한국식품연구원이 2014년 2차례 용도 변경을 요청했을 때 성남시가 검토한 내부 문건을 바탕으로 해당 의무조항을 ‘이용’하려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판결문(24.11.15)
제1차, 2차 입안제안에 대한 성남시 검토사항에서 국토부가 백현동 부지의 매각을 위해 이 사건 의무조항에 의하여 성남시의 의사와 무관하게 용도지역 변경을 강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상위계획 불부합 문제에 관한 처리방안으로 이 사건 의무조항을 이용하는 방안이 검토되었을 뿐이다.
한국식품연구원이 2차례 냈던 요청서는 성남시가 섣불리 들어주기 어려웠습니다. 용도 변경 문제도 있었지만 부지에 R&D 단지를 세우거나 대기업을 유치하려던 성남시의 기존 입장과 크게 달랐기 때문이죠. 주거시설을 지을 수 있게 해주더라도 어느 정도 구색은 맞춰야 했습니다.
하지만 만일 국토부가 의무조항을 근거로 “용도 지역을 바꿔라”라고 명령한 것이라면, 한국식품연구원이 요청대로 해줄 수 있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성남시가 한국식품연구원 1·2차 제안이 가진 문제를 처리할 방안으로 의무조항을 이용하려 했다고 봤습니다.
다만 성남시가 왜 의무조항을 ‘이용’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백현동 개발비리’ 재판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검찰은 이 대표가 당시 성남시장으로서 민간업자들과 결탁, 그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징역형 집행유예라는 악재 뿐만 아니라 백현동 개발비리에 불리한 내용까지 담긴 판결. 이 대표는 항소심에서 어떻게 뒤집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