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
‘상속 후 공제설’ 판례 변경
대법 “상속인 권리 보호”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대학교수·공무원·사립대학 교수 등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을 때 유족이 망인의 퇴직 연금을 더 많이 지급받을 수 있도록 판례가 변경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피해자인 망인의 상속인들이 권리를 더욱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는 21일 교통사고로 사망한 대학교수 A씨의 유족 측이 가해자 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따른 원심(2심) 판결을 깨고, 새로운 법리를 선언하면서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원심 법원에 돌려보냈다.
사건은 사립대학 교수 A씨가 2016년 9월께 오토바이를 몰다 불법 유턴하는 택시와 충돌해 사망하면서 발생했다. 유족 측은 배상 책임이 있는 택시연합회를 상대로 손해뱁상 소송을 냈다. A씨가 살아있었다면 받을 수 있었던 급여와 퇴직 연금 등을 배상해달라고 했다.
법적 쟁점은 A씨의 아내가 이미 별도의 유족 연금을 지급받고 있다는 것에서 불거졌다. 퇴직 연금과 유족 연금은 중복 지급할 수 없다. 이중 지급을 막기 위해 퇴직연금 일시급을 지급할 땐 이미 나간 유족연금 액수를 공제하도록 한다. 쟁점은 A씨의 아내가 받는 유족 연금을 공제하는 순서였다.
A씨의 퇴직연금 일시금 중 유족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약 1억 5000만원이었다. A씨의 유족은 이를 먼저 상속한 뒤 중복되는 유족 연금만 공제하는 방식을 주장했다. 이른바 ‘상속 후 공제설’이다. 이렇게 되면 유족 측에 유리하다. 배우자·자녀들에 대한 상속이 이뤄진 다음 배우자 몫에서만 유족연금이 공제된다.
반면 택시연합회 측에선 유족연금을 먼저 공제한 뒤 퇴직연금을 상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공제 후 상속설’이다. 여기에 따르면 유족들이 받게 되는 퇴직연금 총액이 상속 후 공제하는 경우보다 적어진다. 기존 1994년 대법원 판례가 취한 방식이 ‘공제 후 상속설’ 이었다.
앞서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상속 후 공제설’을 택해 택시연합회가 A씨의 자녀들에게 각각 4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2심은 ‘공제 후 상속설’을 택했다. 여기에 따르면 유족연금을 먼제 공제하게 되므로 남은 잔액이 없게 된다. 상속분을 수령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속 후 공제설’을 택해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전원합의체는 “퇴직연금 일시금 상당의 손해배상 채권이 상속인들에게 상속 비율에 따라 공동 상속된 뒤 손해배상 채권에서 유족연금을 공제해야 한다”며 “반대로 한다면 유족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한 법률의 목적과 취지가 몰각되며 사회보장 재원으로 가해자 책임을 면제하는 결과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망인의 손해배상채권과 유족연금 수급권은 귀속주체가 서로 달라 상호보완적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유족연금의 지급으로 다른 상속인들이 상속한 손해배상채권에 대해 전보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이를 공제한다면 손해배상채권의 전부 또는 일부가 박탈당하게 된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느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기존 방식은 유족연금으로 손해회복을 받지 못한 상속인들의 손해배상채권을 전부 또는 일부 침해하는 결과가 될 뿐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의 재원으로 가해자를 면책시키는 결과에 이를 수 있었다”며 “판례를 변경함으로써 상속인들의 권리를 더욱 보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