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가금류 1000만마리 넘어

당국 안이한 대처 ‘골든타임’놓쳐

때이른 독감 유행…학교마다 비상

“AI·독감 유전자 교환·변이 우려

#1.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선 지난 5일 감기로 인한 결석생 수가 100여명에 이르렀다. 이번주 들어서도 한 반에 1~2명씩은 감기로 인한 결석생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 학교 보건교사 이모(42ㆍ여) 씨는 “현재 우리 학교에는 30여명이 독감 의심 환자로 파악되고 있으며, 주변 학교엔 더 많은 경우도 있어 전체가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포토>‘1천4백 만마리 매몰’ AI 역대 최고 속도로 번져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5N6형) 확산에 따른 가금류 살처분이 역대 최대 기록을 넘어선 가운데 14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철새들이 찾는 성호 저수지에서 광역방제기 방역이 이뤄지고 있다. 이천=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2. 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정모(40ㆍ여) 씨는 집근처 대형마트에 들러 계란을 사려 했지만 실패했다. 남은 것 하나 없이 모두 매진됐기 때문이다. 최근 크게 확산된 조류독감(AI)이 산란계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며 계란 공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계란 판매대에 부착된 ‘1인당 한 판 이상 살 수 없다’는 내용의 안내 표지가 무색했다. 정 씨는 “실제로 시장에 나와보니 AI가 실감난다”며 “AI에 대한 걱정으로 닭ㆍ오리고기를 사는게 꺼려지는데다 앞으로 계란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도 높다는 말까지 들려오니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 반 넘게 뜨겁게 타오른 촛불 물결에 전국민들이 동참하는 동안 소리없이 다가온 전염병의 그림자가 국민 안전과 행복을 위협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은 바로 고병원성 AI다. 14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H5N8형 고병원성 AI는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방역조치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전국에 확산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3일 0시까지 전국에서 닭ㆍ오리ㆍ메추리 등 가금류 981만7000마리가 살처분됐고 앞으로 253만6000마리가 더 살처분될 예정이다. 지난 10월 28일 고병원성 AI가 처음 발견된 이후 불과 한 달 반만에 살처분된 가금류의 수는 1000만마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4년 기록한 역대 최대 피해 규모(195일간 1396만마리 살처분)도 넘어설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AI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된데는 정부의 안이한 대처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지난 2014년 이미 대규모 AI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골든타임’을 놓치는 실수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AI 발견 14일 후인 지난달 11일에야 가축방역심의회의에서 AI 관련 자문을 얻었고, 시ㆍ도 부시장 및 부지사 회의를 개최하며 본격 대응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국정 동력이 떨어진 상황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매뉴얼에 따라 가동되었어야 할 위기대응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확인된 만큼 비판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수의학 전문가는 “국내에 미리 들어와 있던 바이러스가 재조합됐을 가능성도 배제하면 안되지만 방역 당국은 AI가 무조건 철새에 의해 옮긴다며 방역을 실시한 것도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도 비판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람들 사이에서도 독감이 예년보다 훨씬 빠르게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8일 독감 유사증상환자(38도 이상 발열, 기침 또는 인후통 동반)가 유행기준을 넘어 ‘독감 유행주의보’를 발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6년 48주(11월 20~26일) 7.3명이던 독감 유사증상환자수는 49주(11월 27일~12월 3일) 13.5명(잠정치)으로 유행기준인 8.9명을 넘어섰다. 2014년(5.1), 2015년(7.0) 같은 시기에 기록한 수치보다 확연히 높으며, 지난 2010년 이후 가장 빠른 추세다.

독감이 인수공통 전염병인 AI와 시기가 겹치며 방역 및 확산 방지에도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재갑 한림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독감과 AI의 초기 증상이 비슷하다보니 오인하고 제대로된 처방이나 대책을 내놓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게 걱정”이라며 “AI와 독감이 동시에 장시간 유행할 경우 유전자 교환을 통한 변이 가능성도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신동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