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두레는 왜 시민사회가 되지 못했나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다. 집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생필품을 사러 나선 시장에서도 나와 남의 교류는 이어진다. 태어나 배우고 일하다 은퇴하기까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다만 이 관계들이 모두 같지는 않다. 가족은 혈연이, 시장은 이해가, 국가는 권력이 묶어낸다. 이러한 메커니즘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공공의 문제를 함께 다루는 영역, 그것이 시민사회일 테다. 우리나라에 이 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두레와 품앗이를 통해 일감을 나눴고, 계는 위험을 분산했으며, 향약은 마을의 규범을 자율적으로 관리했다. 국가가 닿지 못하는 자리를 주민이 스스로 메운 상부상조의 결사체였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전통과 정신이 근대 시민사회로 온전히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맥락과 발전국가의 산물로서의 한국 시민사회를 생각해 본다. 이에 우리의 시민사회 역사는 다소 슬픈 모습이다. 식민지 시기 자발적 결사는 통제와 동원의 대상이 되었고, 1970년대
2026-09-03 10:5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