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산 음주·노래 등산객 눈살 “땀 흘려서 그런지 꿀맛이네. 안주가 필요없구만.”

빨간색 등산복을 입은 한 60대 남성이 술잔을 털어내며 말했다. 그의 등산화 옆엔 이미 비워낸 술병 2개가 놓여있었다. 지난 25일 경기도 파주의 한 둘레길에는 곳곳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환경부가 지난 13일부터 자연공원 (국립ㆍ도립ㆍ군립)에서 음주를 하면 과태료를 내야 하는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음주산행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둘레길 정상에서 한 20분정도 내려왔을까. 둘레길 구석에서 트로트 음악 소리가 들렸다. 나무 사이로 60대 등산객 대여섯 명이 김밥과 과일에 소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 산악회 이름이 적힌 리본이 달려있는 가방도 보였다. 이들 대부분은 국립공원에서 음주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남성은 “여기는 국립공원이 아닌 동네 산이라서 괜찮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남성은 “이렇게 얕은 산은 뛰어갔다 와도 30분인데 술 먹는다고 해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맞장구 쳤다.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술을 마셔도 된다는 주장이다. 이번에 개정된 ‘자연공원법 시행령’에 따르면 음주가 적발되면 1차 5만원, 2ㆍ3차 각각 1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하는데,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둘레길 전망대에서 만난 전모(71) 씨는 “산에서 술 마셔도 그동안 문제 하나도 없었다. 쓰레기 잘 버리고 적당히 마시면 되는 거지, 왜 정부가 나서서 못하게 하는 것이냐”며 “소시민들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못하게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같이 온 친구 한모(70) 씨도 “북한산에 자주 다녔는데 북한산 중간에 음식점이 다 사라져 등산의 맛이 다 사라졌다.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흥겹게 산 올라가는 게 왜 나쁘냐”고 거들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립공원 내 음주행위로 인한 안전사고 발생은 최근 6년간(2012년~2017년) 총 64건으로 전체 안전사고(1328건) 중 약 5%를 차지한다. 특히 추락사ㆍ심장마비 등 음주로 인한 사망사고는 총 10건으로 전체 사망사고(90건)의 약 11%에 달한다.

둘레길을 찾은 사람들은 곳곳에서 풍기는 술 냄새에 불만을 드러냈다. 8세, 6세 자녀와 함께 온 윤모(40) 씨는 “내려오는 사람들마다 술 냄새가 난다”며 “비틀거리는 사람들과 아이가 부딪칠까봐 조마조마 했다”고 걱정했다.

일각에선 국립공원에서의 음주단속이 시작되면서 비국립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등산객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가족들과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김윤수(56) 씨는 “실제로 전에 비해 음주하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 여기는 단속하는 사람도 없으니 마음 편히 마시는 분위기”라며 “국립공원에서만 음주 단속을 할게 아니라, 사람들이 더 자주 찾는 동네 산, 둘레길도 음주를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희 기자/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