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야생 멧돼지에 의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전파 가능성이 결국 현실화됐다. 비무장지대(DMZ) 남쪽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에서 연이어 ASF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이다. 허를 찔린 방역당국은 비상이 걸렸다. 우선 멧돼지에 의한 바이러스 확산 차단을 위해 접경지역 인근 7개 시도군의 ‘야생 멧돼지 전면 제거’ 조치를 내렸다. 이들 지역에는 철책과 트랩을 설치하고 총기를 사용한 포획도 허용키로 했다. 하지만 한발 늦은 조치로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야생멧돼지 이동반경이 넓고, 개체 수가 30만마리 이상으로 관리가 쉽지 않아 바이러스 전파 속도가 빠르다.

정부는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국방부 등 관련부처 합동으로 야생멧돼지 제거에 나섰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철저한 초기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수많은 지적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 ASF 처음 발견됐을 때부터 야생 멧돼지가 매개체였을 가능성이 수차례 제기됐다. 북한에서 이미 ASF가 창궐했고, 하천을 통해 남한으로 떠내려온 죽은 멧돼지들이 감염됐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남방한계선 철책에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구축돼 DMZ 내 멧돼지 등의 남측 이동이 차단돼 있다”면서 ASF에 감염된 멧돼지가 북한에서 남하할 가능성은 사실상 일축했다. 살처분 등 방역대책 역시 사육돼지 중심으로 이뤄졌다. 애먼 사육농가가 피해가 컸다.

게다가 야생멧돼지는 번식기에 접어들면 이동이 활발해진다. 11월 이전에 포획을 시작해야 효율적이다. 한데 사육돼지에만 신경쓰느라 그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도 이유가 있다. 멧돼지는 통상 하루 15㎞ 정도 이동하나 번식기에는 100㎞까지 움직인다고 한다. 그만큼 행동 반경이 커 제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DMZ은 국방부, 사육돼지는 농식품부, 야생 멧돼지는 환경부로 소관부처가 달라 원활한 협력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골든 타임을 놓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국가 재난급 가축 질병이 발생했는데, 부처이기주의와 복지부동은 없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돼지 관련 질병은 관리가 어려운 멧돼지가 매개가 되는 경우가 적지않다. 야생동물 질병관리 업무를 일원화할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동물기구의 ASF 지침에도 농림식품부 산하의 수의 당국이 멧돼지 사체를 책임 관리하게 돼 있다. 한데 우리는 멧돼지를 포함한 야생동물 질병은 환경부 소관의 국립환경과학원이 총괄하고 있다. 차제에 민간에도 많은 피해를 주는 멧돼지 개체를 대폭 줄이는 방안도 함께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