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가방·생수병·벽지·커튼·신용카드 모두 플라스틱…환경호르몬 뿜으며 내분비 교란 등 심각한 부작용 속출

화학硏, 비닐 6개월 내 100%분해·페트병 의약품 원료 개발 등 R&D 박차…인류 문제 집중 사회·환경문제 앞장

플라스틱 대한민국…‘그린 화학기술’이 불명예 탈출구
화학연 연구진이 미생물을 이용해 페트병의 주성분을 의약품 원료로 전환하는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
플라스틱 대한민국…‘그린 화학기술’이 불명예 탈출구
화학연 연구진이 콜드체인 안심 스티커가 부착된 식료품을 들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화학기술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일등공신 중 하나로 꼽힌다. 이중에서도 플라스틱은 일상생활 속에서의 편리함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가져다줬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 노트북 등의 외피는 고강도 플라스틱인 폴리카보네이트로 이뤄져 있다. 자동차나 대중교통도 금속 부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플라스틱이다. 장판, 벽지, 커튼, 창호, 신용카드는 PVC로 만들어진다. 청바지, 티셔츠 등의 의류와 가방, 생수병 용기는 PET라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마트나 편의점의 식료품 소포장 용기도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하지만 이 같은 플라스틱의 유용성 뒤에는 환경 호르몬이라 부르는 내분비 교란물질과 플라스틱 쓰레기 양산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수반된다. 이른바 화학물질 공포증인 ‘케모포비아’ 현상이다.

플라스틱은 미생물이 분해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자연에서 분해되는 시간이 매우 길다. 생산물과 폐기물 양도 많다. 국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18년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지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된 지역 2위와 3위에 인천과 낙동강 하류가 꼽혔다. 2016년 통계청 조사에는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이 98.2kg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위한 국제적 합의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제4차 유엔 환경총회에서는 2030년까지 1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의 획기적 저감 등을 담은 환경정책 결의문이 채택됐다. 국내에서도 1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전면 혹은 부분 사용 금지 정책이 나왔다.

▶환경오염 막는 친환경 플라스틱?폐플라스틱 자원화도 가능=최근 화학기술의 패러다임은 화학으로 발생한 환경 및 건강문제를 화학기술로 해결하자는 이른바 녹색화학으로 전환되고 있다. 녹색화학을 구현할 대표주자로는 생분해성 비닐봉투 제조기술이 꼽힌다. 플라스틱 사용 규제 중 대표적인 것이 1회용 제품, 비닐봉투다. 하지만 생분해성 비닐봉투는 땅 속에 묻으면 6개월 이내에 90% 이상 썩기 때문에 규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물론 기존에도 생분해성 비닐봉투 제조 기술은 있었다. 하지만 잘 찢어져서 실제 비닐봉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한국화학연구원 황성연 박사팀은 기존 생분해성 비닐봉투와 비교해 2배나 더 질기고 6개월 이내에 100% 분해되는 고강도 비닐봉투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목재펄프와 게 껍질에서 추출한 보강재를 첨가해 기존 바이오플라스틱 한계를 극복했다. 게 껍질에 포함된 키토산은 천연 항균제로 박테리아를 살균하는 능력이 있어 자체적으로 식품 부패를 방지하는 항균 능력까지 갖췄다. 기존 석유계 비닐봉투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면서도 친환경적인 비닐봉투와 빨대, 포장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비닐봉투 외에 흔히 손꼽히는 플라스틱의 대명사로는 페트병이 있다. 이 페트병을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대체하거나 재활용하려는 노력도 한창이다.

화학연 황동원·황영규 박사팀은 페프(PEF)의 핵심 원료 생산 기술을 개발했다. 페프는 페트병을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플라스틱이다. 연구팀은 페프의 출발물질인 글루코스를 프럭토스로 바꾸는 촉매 공정을 만들었다. 이 촉매는 기존 공정에 쓰이는 효소보다 저렴하고, 재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연구팀은 공정을 두 단계에서 단일 공정으로 간소화했다. 비용도 기존 효소 공정과 비교해 50%나 줄였다. 페프 바이오 플라스틱의 핵심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페트병을 의약품 원료로 재탄생시키는 기술도 있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자원으로 재활용한다는 개념이다. 화학연 김희택·주정찬·차현길 박사팀은 페트를 의약품과 플라스틱 원료 등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페트병의 주성분인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를 화학적으로 분해하고 생물학적으로 전환해 유용한 소재로 바꾸는 기술이다. 공동 연구진은 물을 이용해 PET를 단량체로 친환경적으로 분해하고, 이를 미생물을 이용해 유용한 소재들로 전환하는 전략을 설계했다.

기술사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친환경 플라스틱 기술도 있다. 바로 식물성 성분인 ‘아이소소바이드’를 이용해 고강도·고내열성의 투명 바이오플라스틱을 만드는 기술이다. 황성연 박사팀이 개발한 이 기술은 지난해 국내기업 일광폴리머에 이전됐다.

이 친환경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제조기술은 환경 호르몬이 없고 강도가 높으며, 고온에서 견디는 내열성도 매우 높다.

해외에서도 다양한 친환경 플라스틱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화학기업 바스프는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했으며 포장재 및 필름 등에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일본 연구진은 카사바 나무에서 추출한 전분과 목재 펄프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를 결합해, 바다에서 30일 만에 분해되는 신소재 플라스틱을 개발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의 순환기술에도 집중하고 있다.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을 기계적으로 분쇄해서 이를 다시 바이오플라스틱 원료로 재활용하거나, 미생물을 이용해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기술이다. 바이오플라스틱이 미생물을 만나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는 퇴비화 기술도 있으며, 바이오플라스틱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가스로 분해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냉장식품 변질 한 눈에 확인하는 안심스티커=플라스틱을 친환경 소재로 대체하거나 유용한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술 외에도 플라스틱 자체의 변신도 있다. 생활 속의 불편함과 사회문제를 해결해주는 플라스틱 화학기술이다.

식품의 온라인 주문과 배송이 활발한 요즘, 배송받은 식료품의 신선도 확인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육안으로 분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정 세균은 서식해도 식품의 맛과 향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냉동식품은 녹았다가 다시 얼려도 외관상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냉장 배송 식품의 변질 여부를 손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스티커가 개발됐다. 식품이 상온(10℃ 이상)에 노출되면 스티커에 이미지가 나타나 변질 여부를 알 수 있는 것. 이를 이용하면 냉장·냉동 배송차량, 이른바 탑차의 오작동에 따른 식중독·햄버거병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 스티커의 핵심은 상온에 노출되면 투명해지는 나노섬유 필름이다. 화학연 연구팀은 새로 개발한 나노섬유 필름의 뒷면에 일반 필름을 붙였다. 저온 상태의 나노섬유 필름은 가느다란 실이 교차한 안정된 형태로, 빛을 산란시켜 불투명하다. 하지만 상온에 일정 시간 동안 노출되면 나노섬유 구조가 붕괴되면서 빛이 투과해 투명해진다. 이 같은 원리로 상온에 노출된 스티커 앞면의 나노섬유 필름이 투명해지면 뒷면의 일반 필름 이미지가 나타난다. 이를 통해 식료품의 변질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했다.

플라스틱은 이처럼 친환경적으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환경 친화적인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 기술,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하고 유용한 자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기술,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는 플라스틱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이미혜 화학연 원장은 “화학기술은 인류의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했지만, 플라스틱 폐기물 등 환경오염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앞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포함해 기후변화 대응, 4차 산업혁명 대응, 바이러스 질병 치료 등 인류의 전지구적 이슈와 사회문제를 화학기술로 해결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