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안푼다면서 재건축도 주저
재건축 풀면 멸실→집값 폭등 우려
80년대 아파트 대량 공급, 순차 재건축 필요
멸실 무서워 미루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해 도심 주거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 안팎에서는 딱히 거론되지 않는 모양새다. 주택 공급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말까지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겠다”고 20일 밝혔다. 집값 폭등에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고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그러나 딱히 묘수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빠른 속도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공공택지가 필요한데 서울 내부나 근교에는 공공택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녹지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그린벨트를 수용해 공공택지로 조성한 뒤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 있지만 여론의 반대가 심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결국 미래세대를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 보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용산 정비창이나 태릉 골프장 등에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 언급되고 있지만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태릉 골프장 일대도 그린벨트 지역이라는 지적이 있다.
결국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확대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할 공급 방안이 없는 셈이지만, 정부는 재건축·재개발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이유는 재건축·재개발 활성화가 집값을 잡는데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 할 경우 투자자들이 몰려 단기적으로 집값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재건축을 활성화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자 은마아파트 등 재건축 대상 아파트의 가격이 큰 폭으로 뛴 바 있다.
또 이주부터 완공까지 길게는 4~5년 걸리는 재건축·재개발 공사기간에는 주택 공급 효과는 커녕 주택이 줄어드는 효과가 난다는 점에서 주거 불안을 더 크게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대단지 아파트 재건축의 주민들이 철거로 이주를 하게 되면 일대 집값이 불안해지는 현상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서울 주택 공급의 역사와 연관지어 따져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서울 아파트는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던 1970년~1980년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는데, 이들 아파트가 현재 대거 재건축 가능 연한(준공 30년차)을 맞은 상태다. 이들을 한꺼번에 개발하도록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할 경우 더욱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문제는 현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지나치게 우려해 재건축·재개발을 꽁꽁 막아놓았고 시간이 갈수록 풀어주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멸실과 공급이 조화를 이루도록 적절한 시간표를 짜서 개발이 되도록해야 했음에도, 그저 당장의 멸실을 줄이는데만 급급해 노후 아파트를 누적시켜 놓았다. 이에 강남과 여의도 등지에는 벽에 금이 쩍쩍 가고, 이중·삼중 주차를 해야할 정도로 주차장이 비좁은 노후 아파트들이 20억~30억원대를 호가하는 기이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현 정부가 집값 급등이 무서워 개발을 막아놓으면서, 차기 혹은 차차기 정부가 감당해야할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