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독 말벌과의 전쟁
재앙은 미묘하게. 처음엔 잔물결처럼 찾아왔다. 2000년대 초반 ‘못 보던’ 검은색 잽싼 말벌이 부산지역 양봉농가에 출몰했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 그러나 이내 그 숫자가 해일처럼 불어났다. 수 백, 수 천 마리가 농가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온화해진 날씨는 신종 말벌이 전국으로 퍼지는 자양분이 됐다. 양봉 농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학계는 신종 말벌에게 ‘등검은 말벌’이란 이름을 붙였다. 환경부는 지난해 7월 등검은 말벌을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직접 피해를 입은 게 벌써 15~16년은 됐습니다.”
백현 양봉협회 부산 지회장은 등검은 말벌의 등장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 마리, 두 마리 찾아온 검은색 말벌이 꿀벌을 잡아가니까. 처음에는 저게 뭔가 싶었지.”
따뜻해진 날씨에 기하급수 번식
농가 매년 1750억 피해액 발생
등검은 말벌은 다른 말벌과는 다른 ‘독특한 사냥방식’을 갖고 있다. 등검은 말벌은 ‘비행하며 사냥’을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른 말벌에 특화된 덫들은 등검은 말벌에게 잘 듣지 않는다.
이에 직접 벌을 낚아챌 ‘잠자리채’가 그나마 효과적인 무기다. 양봉업자들은 잠자리채를 들고서 등검은 말벌을 잡았다. 일손이 부족하면 아내와 자식들이, 이웃사촌까지 나와서 함께 등검은 말벌을 잡아야만 했다. 등검은 말벌은 다른 말벌 집단에 비해서 숫자도 많다.
등검은 말벌은 수도권, 백두대간 일부 고산 지역을 제외하곤 전국적으로 출몰한다. 유럽에서는 대표적인 등검은 말벌 피해국가가 프랑스인데,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확산 속도는 12.4km/yr(year,년) 수준인 반면, 한국에서는확산속도가 67.3km/yr에 달한다. 5~6배 가량 빠르다.
등검은 말벌은 빠른 확산속도로 대한민국 전역을 사정권에 넣었다. 등검은 말벌에겐 새롭게 별명도 붙었다.
‘꿀벌 포식자’. 수천 수백마리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벌통을 찾아와 꿀벌을 낚아채가자 붙여진 것이다.
정철의 안동대 교수 연구팀이 2018년 200군 이상의 꿀벌을 사육하는 양봉농가 1783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해 등검은 말벌에 의한 꿀벌 피해율은 24.3%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 농가의 91.6%가 등검은 말벌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피해액은 매년 1750억원에 달한다.
잠자리채로 잡는 방법이 최선
퇴치 쉽지 않아, 현장선 속앓이
등검은 말벌 권위자인 정철의 국립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최근 온화해진 한반도 기후가 등검은 말벌의 활동에 도움을 줬다고 본다. “등검은 말벌은 원래 따뜻한 지방에 잘 적응하는 생물입니다. 한반도는 지난 100년간 평균온도가 1.8도에서 2.1 도 정도 이제 상승했습니다. 한반도가 등검은 말벌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된 셈입니다.”
등검은 말벌 연구자인 김동원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사도 입을 모은다. “최근 날씨가 온화해지면서 등검은 말벌에 있어서도 더욱 발육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어요. 앞으로 개체수가 더 빨리 많아질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생태계에서 등검은 말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늘어가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정철의 안동대학교 교수팀이 지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간 진행한 ‘전국 말벌 실태조사 결과, 2018년 포획된 말벌의 단 49%만을 차지했던 등검은 말벌 비율은 2019년에는 72%까지 증가했다.
말벌 포획 비율은 2018년 등검은 말벌 49%, 말벌 19%, 장수말벌 11%, 꼬마장수말벌 9% 순. 2019년은 등검은 말벌 72%, 장수말벌 8%, 좀말벌 6%, 말벌 5% 순이었다.
올해는 유독 꿀 생산량이 떨어진다고 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올해 벌꿀 생산량(아카시아, 야생화, 밤꿀 생산량 합계)은 전국적으로 약 8000 톤 수준에 그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전국에서 생산된 벌꿀은 7만9099톤, 2018년에는 3만3137톤, 2017년에는 7만3039톤이었다.
등검은 말벌의 피해와 함께, 올해는 전국적으로 극심했던 이상기온 현상이 벌꿀 생산에 영향을 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4월 달에 전국적으로 추위가 찾아왔여요. 아카시아꽃이 이제 정상적으로 개화 하지 못했죠.” (김동원 박사)
“최근 봄철에 온도상승이 심하면서 꽃들이 한번에 피는 현상이 늘고 있어요. 이 경우 꿀벌들이 채밀(꿀을 모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죠.” (정철의 교수)
봄 날씨가 따뜻해지면,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개화를 한다. 이를 ’동시개화성‘이라고 한다. 꽃이 피는 시기 달라야 벌들이 딸 수 있는 꿀도 늘어나는데, 꽃이 한번에 피면 자연스레 수확량은 떨어진다. 올해는 지난 4월 전국적인 한파도 찾아왔다. 그때 제대로 아카시아꽃이 개화를 못하며 꿀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양봉산업 생태계 자체 휘청
피해는 결국 인간에 되돌아와
이런 현상을 종합해 ’기후 불확실성의 증가‘라고 한다. 이전에는 일정정도 예측이 가능했던 한반도 기후가 이제는 제대로 예측하기 힘든 환경이 되는 것이다.
먹이사슬 말단에 위치하는 꿀벌은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양봉과 관련돼 지급된 보험금 액수는 56억2520만원에 달했다. 보험금 지급액수는 해마다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보험금 지급액수가 5225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 2016년 보고서 ‘수분 및 수분매개체 평가서’를 통해 과거 50년 동안 벌 개체 수의 37%가 감소했고, 현재 2.8%의 벌 종이 멸종위기, 1.2%의 벌 종이 멸종 위협에 놓여 있다고 봤다. 꿀벌은 먹이 사슬을 유지하는 뼈대다. 꿀벌이 입는 피해는 결국에는 인간에까지 이를 수밖에 없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