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등 유럽 곳곳 화마 휩싸여
中남부·서유럽 2~3일간 1년치 비
佛남부 4월 영하·브라질 8월 눈...
열돔현상 전세계적 기후변화 사례
올해 가을에는 풋내 가득한 와인 ‘보졸레 누보’와 갓 볶은 ‘브라질 커피’를 예전처럼 즐기기 힘들 전망이다. 연초 프랑스에 몰아닥친 한파, 그리고 8월에 눈이 펑펑 내린 브라질 고지대 이상기후 때문이다.
올해 4월 프랑스 영어 뉴스 방송 ‘프랑스24’는 불타오르는 포도밭 현장을 보도했다. 프랑스의 와인 주산지인 브르고뉴와 샹파뉴, 보르도에 몰아닥친 때 아닌 한파에 포도나무가 얼어죽는 것을 막고자 농부들이 밭 고랑마다 모닥불을 붙인 것이다.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에도 좀처럼 영하로 떨어지지 않은 프랑스 남부에서 4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며 내린 눈과 서리가 만든 풍경이다.
문제는 지난 겨울 프랑스는 예년보다 높은 기온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따뜻한 겨울 덕에 포도나무들도 일찌감치 싹을 틔웠다가 예상치 못한 4월 한파에 피해가 커졌다. 프랑스의 포도 생산량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올해 와인 생산 역시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상 기후에 커피값도 불안하다. 최근 브라질에 몰아친 추위와 눈이 그 주범이다. 겨울인 7월에도 20도에 가까운 기온을 유지하던 브라질은 지난달 말 0도에 가까운 한파가 몰아닥쳤다. 일부 지역은 영하로 떨어지며 눈까지 내렸다. 이 소식에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커피 선물 가격은 단숨에 8% 급등하며 2016년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2021년 지구촌이 이상기후에 몸살을 앓고 있다. 7월 중국 남부와 서부 유럽은 한 해 전체 강수량에 육박하는 비가 단 2~3일 만에 내리면서 100년만의 물난리를 겪었다. 독일은 피해액만 우리 돈으로 8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에서는 폭우에 태풍까지 겹치면서 한 달이 넘도록 피해 추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같은 달 러시아 모스크바는 낮 기온이 34도에 육박하는 때 아닌 무더위에 시달렸다. 평년보다 10도 가량 높은 기온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부 지역은 50도를 넘기도 했다. 러시아 시베리아 대평원, 캘리포니아의 울창한 산림에 몰아닥친 산불도 때 이른 고온이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이상고온 현상이 만든 산불은 터키와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연일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 지난달 말 일부 지역에서 발화된 그리스 산불은 강한 바람과 만나 이제는 2000년 역사의 유적 창고 아테네까지 위협하고 있다. 올림픽의 발상지인 올림피아는 화마가 코 앞까지 다가왔고, 사람들은 배를 타고 급히 불을 피해 도망가기도 했다. AP통신은 수도 아테네를 중심으로 24시간 동안 산불 118개가 발생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리스에서 지난 4일 기록된 47.1도의 기온은 1977년 수도 아테네의 역대 최고 기온 48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이다.
터키의 산불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달 28일 남부 안탈리아에서 시작된 터키의 산불은 지금까지 163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이 중 11건은 지난 6일 기준 아직도 불길을 잡지 못한 상황이다.
산불이 확대된 이유로는 강한 바람, 건조한 날씨, 그리고 지구 온난화가 불러온 고온 현상 때문이라고 터키 당국은 설명했다. 북아프리카의 뜨거운 공기로 인해 기온이 40도 이상으로 치솟으며 지중해 유역 다른 지역에서도 화재가 이어지고 있다.
역시 산불로 고통받고 있는 미국 서부도 마찬가지다. 무더위에 가뭄까지 겹친 환경의 변화가 산불에 이어 물부족 현상까지 만들었다.
캘리포니아 수자원부는 현지시간 7일 대형 수력 발전소인 에드워드 하이엇 발전소의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에서 네 번째로 큰 수력 발전소로 전력 생산을 멈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로빌 호수가 역대 최저 수위인 24% 수준까지 떨어진 결과다. 캘리포니아 수자원부는 “기후 변화에 따른 가뭄으로 발생한 전례 없는 상황 중의 하나”라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인근 유타주 상황도 비슷하다. 가뭄에 미시시피 강물이 줄어들면서 그레이트 솔트 호수의 수위가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유타주 생활 및 농업용수원 중 하나인 그레이트 솔트 호수 수위는 평소 30m를 유지했지만 지금은 11m까지 낮아졌다. 일각에서는 1200년만에 최고의 가뭄이라며 한 낮에 잔디에 물 주기까지 금지할 정도다.
이상 고온의 피해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7월부터 8월 초까지 밤에도 25도 이상이 계속되는 열대야가 일상이 된지 오래고, 온열질환 관련 구급출동 건수도 지난해보다 6배 가까이 늘어난 553건에 달했다.
4대강에 발생하고 있는 녹조도 심각한 수준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에 따르면 지난 2일 낙동강 물금·매리 지점에서 ㎖당 일주일 전 7525개에 불과했던 남조류 개체 수가 4만2385개(cells) 측정됐다. 환경청 관계자는 “최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남조류가 늘어났고, 이 때문에 해당 구간이 녹색을 띠고 있다”며 이상 고온이 가져온 환경 재해로 진단했다.
올해 우리나라 상공은 덥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과 덥고 건조한 티베트 고기압이 겹치며 열돔 현상이 나타났다. 이 열돔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유럽까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열돔 현상은 기후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고 북극과 남극 지역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공기 순환이 줄어들고 공기 흐름도 느려진 결과 더운 고기압의 정체가 계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