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쓰레기를 분리배출할 때 실제 분리배출표시 도안을 보고 버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통상 우리는 비닐처럼 생긴 건 ‘비닐’ 분리함에, 플라스틱처럼 생긴 건 ‘플라스틱’ 분리함에 버린다. HDPE, LDPE 등 어려운 분류는, 일반 시민들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분리배출표시 도안은 도대체 뭘 위해 존재하는 걸까.
분리배출표시 제도는 재활용의무대상 포장재를 쉽게 분리배출하도록 돕고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의 분리수거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분리배출표시가 의무화된 포장재는 ▷종이팩 ▷금속캔 ▷유리병 ▷합성수지(플라스틱) 재질 포장재 ▷합성수지 재질 필름·시트형 포장재 및 발포합성수지(스티로폼) 완충재 ▷합성수지재질의 1회용 봉투·쇼핑백 등이다. 이에 해당하는 포장재에는 아래 그림처럼 분리배출표시가 붙어야 한다.
문제는, 분리배출표시가 붙어있다고 해서 반드시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재활용은 배출 이후에도 수거, 선별 등 과정을 밟는데, 이 때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페트(PET) 등 각 세부 소재별로 최대한 나뉘어 있어야 재활용 가치가 높다. 이에 애초부터 여러 소재가 섞여 만들어진 복합 재질 플라스틱, 즉 ‘OTHER’ 표시가 붙은 플라스틱은 소비자가 공들여 분리배출하더라도 선별 과정에서 쓰레기로 분류된다.
비단 ‘OTHER’ 뿐만 아니다. 포장재의 각 부분이 서로 다른 소재로 만들어졌거나, 별도의 도구 없이는 마개를 몸체에서 분리하기 힘든 경우 역시 재활용이 어렵다. 각종 장식이 더해진 화장품 용기, 펌프 뭉치에서 스프링을 분리해내야 하는 샴푸 포장재가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을 생수병과 같은 단일재질 재활용품과 함께 배출하면, 오히려 선별 작업을 어렵게 해 재활용률을 떨어트리는 역효과를 낸다.
그래서 나온 대책은 포장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정보에 더해 재활용 용이성 등급도 함께 표기하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2019년 12월, 포장재가 재활용이 얼마나 잘 되는 재질·구조인지 평가해 등급을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 4단계로 나눈 뒤, 이 중 ‘어려움’ 등급을 받은 포장재에는 ‘재활용 어려움’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했다.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으면, 포장재 생산자가 재활용사업공제조합에 내는 재활용 분담금도 최대 30% 늘어난다.
그럼 ‘재활용 어려움’ 등급이 붙은 포장재는 그냥 일반 쓰레기로 배출하면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재활용 용이성 등급을 표기하는 취지는 소비자로하여금 재활용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제품 구매 단계에서부터 재활용 등급을 확인하도록 유도하고, 이로써 재활용이 용이한 포장재를 사용한 제품을 구매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이 제도의 목적이다.
이렇게 구매 단계에서부터 포장재의 친환경성을 고민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 기업 또한 ‘재활용 최우수’ 등급의 포장재를 사용하려는 유인이 커진다. 즉 분리배출표시 제도는, 최소한 소비자에게 있어서는 쓰레기를 배출할 때보다는 제품을 소비할 때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다만, 분리배출표시가 소비 단계에서 더 큰 역할을 하려면 ‘재활용 어려움’ 표기를 더 돋보이게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진행한 ‘2022 미래한국 아이디어 공모전’의 수상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공모전에 참여한 ‘다시그린가치’팀은 재활용 용이성 등급 기준을 세분화하는 한편, 등급을 초록-노랑-주황-빨강색 등 색깔별로 표시하고 QR 코드로 관련 내용을 확인하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전자제품에 1~5단계 에너지 소비효율 등급이 표기하는 것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