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빠지고 수급지수 악화
월세 전환 가속화에 전세 맥 못춰
“내년 전세가 하락 멈출 것” 전망
[헤럴드경제=박자연 기자] 아파트 전세가격이 역대 최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고금리 기조, 늘어나는 월세 수요, 입주물량 증가 등으로 전세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하지만 전셋값 하락세가 계속 이어지긴 어렵고 내년 하반기 이후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12일 KB부동산에 따르면 12월 첫주(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주 대비 0.89% 내려 2008년 4월 조사이래 가장 크게 하락했다. 이 같은 하락폭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최대 주간 하락폭(-0.7%) 보다 크다. 특히 강남구는 전주 대비 –1.03% 변동률을 기록해 조사 이래 처음으로 1%대 폭락을 기록했다. 전국으로 시야를 넓혀도 전세 하락세는 두드러진다. 지난주 전국 아파트 전세가는 0.66% 내려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많이 떨어졌다.
전셋값이 떨어지는 건 수요 대비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전세 수급지수는 매주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주 서울 아파트 전세 수급지수는 46.6으로 2003년 7월 조사 이래 가장 낮았다. 이 지수는 0~200 범위에서 100보다 낮을수록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의미다. 반대로 100이상이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는 뜻이다. 전셋값 폭등기였던 2021년 8월 첫째주(2일기준)만 해도 184를 기록할 정도로 수요가 공급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전세 거래도 역대급으로 저조한 수준이다. 지난주 서울 전세거래지수는 4.7로 전월(5.3) 보다 더 떨어졌다. 이 지수는 KB국민은행 회원 중개업소를 상대로 ‘활발함’과 ‘한산함’을 물어 작성하는 것으로 0~200 범위에서 100 밑으로 떨어지면 ‘한산함’이라고 답한 중개업소가 ‘활발함’이라고 답한 곳보다 많다는 의미다. 지난주 답변한 중개업소 가운데 ‘활발함’이라고 답한 곳은 한 한곳도 없었다.
한국부동산원 기준으론 하락폭이 더 크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주 전국 아파트 전세가는 0.73% 하락해 2012년 5월 조사 이래 하락폭이 가장 컸다. 특히 수도권은 주간 기준 낙폭이 –1%로 역대 처음 1%대 폭락했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는 31주 연속,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26주 연속 하락 중이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매매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전세 가격까지 하락하는 상황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평가한다. 통상 집값 하락기에는 주택수요자들이 전세를 선택해 전세 수요가 늘기 때문이다. 그러다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올라가면, ‘차라리 돈을 조금만 더 보태 집을 사자’는 식으로 매수 심리가 강해져, 집값이 상승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동반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동시에 하락하는 가장 큰 이유로 ‘월세’를 꼽는다.
올해 한국은행이 8차례 금리를 올린 효과로 월세를 내는 게 전세 보증금 대출로 인한 대출이자보다 싸기 때문에 임차인이 전세보단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세 수요가 대거 월세로 빠지면서 전셋값 하락세를 이끌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11일까지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총 8만6889건으로 전체 전월세 거래량(20만8315건)의 41.7%를 차지했다. 이는 통계가 공개된 201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월세가격 상승추세는 지난해 6월부터 18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선 전셋값 하락세가 내년에도 계속 이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월세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이런 추세가 계속되고, 기준금리 인상이 둔화되면 대출이자가 월세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연구소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2023년 매수 수요가 감소하면서 전세 임대차시장으로 유입될 것”이라며 “내년 전세가격 하락세는 끝이 나고 상승세로 전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택산업연구원도 전세가격 하락세가 내년 하반기 둔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주산연은 내년 부동산 시장을 전망하는 보고서에서 “올해는 매매가격 하락과 입주물량 증가로 인해 전세가격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면서도 “경제성장률, 금리 등 경제변수를 고려하면 내년 전세가는 4% 하락이 예상되지만, 상반기 중 저점을 형성하고 그 이후 약보합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