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스트리밍이 대세로 자리잡은 지 오래, 요즘 앨범을 누가 사?”
이런 의문은 ‘돌판(아이돌판)’의 생태계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K-POP(케이팝)과 팬덤의 성장에 힘입어 실물 앨범 판매량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사실 앨범 구매는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팬덤 영향력을 과시하고 팬미팅 응모권이나 포토카드를 얻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상당수 앨범은 구매 후 포토카드 등을 빼고 나면 쓸모가 없어진다.
남는 건? 앨범에 쓰인 플라스틱 쓰레기들이다. 작년 한해에만 8000만장의 앨범이 팔렸다. 그리고 8000만개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써클차트(가온차트)의 집계에 따르면, 실물 앨범 판매량은 2018년 2000만장을 돌파한 후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2020년엔 4170여만장까지 늘었다. 이후로도 매년 급증세다. 작년 한 해 동안 팔린 실물 앨범은 7419만554장이다. 이는 12월 중순까지 집계한 결과로, 실제 한 해 판매량은 8000만장을 돌파한 게 유력시된다.
실물 앨범 판매의 급증세는 전 세계적 흐름과도 역행한다. 실시간 재생의 ‘스트리밍’이 자리잡으면서 CD나 LP, 카세트 등 실물 앨범 판매량은 줄고 있다.
최근 빌보드와 데이터 분석회사 루미네이트에 따르면, 작년 스트리밍은 12.2% 증가, 1조2680억회를 기록했다. 스트리밍이 1조회를 넘어선 건 작년이 처음이다. 작년 미국 시장에서 실물 앨범 판매량은 7989만장으로 전년(8279만장)보다 3.5% 감소했다.
특히 작년 미국 내 CD 앨범 판매량 상위 10위권에 케이팝 앨범이 7장이나 올랐다. 이와 관련, 빌보드는 “케이팝 앨범들은 CD 판매량이 많고 많은 케이팝 앨범들이 굿즈 상품들과 함께 정교하게 포장된다”고 해석했다.
실물 앨범을 대량 구매하는 이유는 음반에 포함된 갖가지 굿즈 때문이다. 포토카드나 미공개된 사진을 모으거나, 가수와 대면할 수 있는 팬미팅이나 사인회 응모권을 여러 장 확보하는 수단이다. 정작 음악을 듣는 건 스트리밍을 활용한다.
사실 CD플레이어도 없는 팬들도 태반이다. CD는 불필요한 쓰레기가 된다. CD는 대부분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이다. 포장재 역시 비닐 소재다.
최근엔 일부 팬 사이에서 이 같은 행태를 개선하자는 요구까지 일고 있다. 지난 2021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케이팝포플래닛’이란 단체는 버려지는 앨범 8000여장을 SM, JYP, 하이브, YG 등 연예기획사들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최근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나무심기 중요성을 공개적으로 강조하자, “나무심지고 훌륭하지만 다음엔 앨범 쓰레기 문제에도 관심 가져달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엔 기획사들도 변화 조짐이 보인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움직임이다.
앨범에는 포토카드나 응모권만 들어있고, QR코드를 찍으면 디지털 음원 파일로 소장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CD가 아예 없어질 순 없더라도 분명 지금보다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음반이 변화해야 한다는 건 이미 모두 인지하고 있는 숙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