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전설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95세를 일기로 5일(현지시간) 타계했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그가 평화 속에 잠들었다”며 “남아공의 위대한 아들을 잃었다”는 말로 비보를 전했다. 지난해 이맘때부터 건강악화로 입원과 퇴원을 수차례 반복했고, 몇 차례 위기가 있었으나 기적처럼 희망의 빛을 이어오다 끝내 영면의 길을 떠나고 말았다.

인간 만델라의 인생역정은 한마디로 질곡의 한 세기였다. 그의 자서전 제목에서 보듯 ‘자유를 향한 길고도 먼 여정’이었다.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용서와 화합의 정신을 현실정치에 그대로 구현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아왔다. 20세기 국제사회에 자타가 인정하는 독보적 영웅이었다.

1918년 남아공 동남부 음베조에서 마을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만델라는 백인 정권의 흑백차별 대명사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맞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끌며 투쟁하다 27년이나 옥살이했다. 결국 1990년 백인 정권은 만델라를 출소시키고, ANC도 합법조직으로 인정하는 등 인종차별 정치를 마감했다. 이런 공로로 1993년 마지막 백인 대통령이던 F W 데클레르크와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고, 이듬해 남아공 최초 민주선거에서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됐다. 곧바로 그는 ‘진실화해위원회’를 구성해 용서와 화합의 탁월한 리더십을 유감없이 실천하며 오늘의 남아공을 건설했다.

억압의 폭정으로 대물려 고통당해 온 8할의 흑인들이, 채찍을 휘둘러 온 2할의 백인 착취자들에게 먼저 용서의 손길을 내민 것, 이것이 바로 만델라 정신이다. 그의 족적은 우리 정치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과거 정치적 탄압과 그 피해를 보복 대신 화해로 실천하고 또 남북 간에 첫 정상회담 등 교류ㆍ협력을 주도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아시아의 만델라’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정부 때는 과거사라는 어둠의 유산을 정리한다며 ‘진실화해미래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관용과 화해라는 만델라 정신보다는 과거 규명과 청산에 치우쳐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인간 만델라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만델라 정신’은 위대함으로 영원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 대화와 타협, 이해와 양보는 철저히 외면하는 대신 과거에만 집착하는 이 땅의 정치 모리배들이 두 무릎 꿇고 받아들여야 할 진정한 가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