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이 무시하던 도널드 트럼프 부동산 재벌이 당당히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자가 됐다. 하지만 미국 학자들은 트럼프의 돌풍은 예상된 일이었다고 말한다. 온갖 막말 파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자신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인물 정치’와 ‘후광이론’…“하나만 잘해도 다 잘해보인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가 어떤 유형의 리더를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미국 예능프로그램 ‘에프렌티스’를 통해 성공한 사업가의 이미지를 굳힌 트럼프는 끝까지 그 이미지를 유지했다. 이른바 ‘후광효과’를 톡톡히 누린 것이다.
후광효과 이론이란, 성공적인 이미지 하나만 있더라도 대중은 그 이미지를 토대로 그 리더가 성공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인지하는 특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도널드 트럼프는 예능 ‘어프렌티스’와 과거 주류 언론들이 만들어놓은 ‘성공한 갑부’ 이미지를 활용해 국가를 잘 운영할 수 있는 리더의 면모를 과시하는 ‘인물 정치’를 펼친 것이다. 테다 스카치폴 하버드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성공한 유명인”이라며 “그 존재감 하나만으로도 다수의 대중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 여론조사 기관인 라스무센이 지난 2월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응답자 48%가 경제 문제와 일자리 창출에 대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보다 트럼프를 더 신뢰한다고 답했다. 국가안보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에 대한 신뢰도가 클린턴보다 높았다.
▶ ‘카리스마적 리더이론’…“변화에 대한 강한 욕구는 카르시마적 리더를 탄생시킨다”
국가가 경제적인 위기나 불안에 놓였을 때 대중은 변화를 갈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적 리더가 탄생한다고 말한다. 2차 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이나 2차 대전의 원흉인 아돌프 히틀러, 쿠바의 독재자 카스트로까지 모두 위기상황에서 탄생한 ‘영웅’이었다. 리더십 학자인 버나드 배스도 “감정의 불안이 크면 클 수록 구세주를 기다리는 심정은 더욱 커져 카리스마적 리더의 탄생은 쉽게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매세추세츠 대학교에서 1800명의 유권자를 상대로 조사를 벌인 결과,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공통적으로 권위주의적 리더를 선호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교육 수준, 월수입, 나이, 성별, 종교, 정당 선호도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권위주의를 추종하고 있었다. 이들의 80%는 국가가 경제적 위기에 놓였으며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테다 스카치폴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의 성공가도만 봐도 그렇다”며 “억만장자라는 정체성은 트럼프가 어떤 권력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밝혔다. 자기과신과 거침없는 막말 행보로 판세를 주도해온 트럼프는 권위주의에 목말라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했다.
▶ 쉬운답이 답이다…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트럼프 연설이 통하는 이유=
블룸버그 통신과 로고 컨설팅그룹이 미국 공화당 TV 토론회를 분석한 결과, 트럼프는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문법과 어휘를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초보 수준의 화법이 트럼프의 인기 비법이었다. 미국 카네기멜런대학교 언어기술연구소는 “트럼프는 세 음절이 넘지 않는 짧고 단순한 단어를 반복함으로써 청중들에게 메세지를 또렷하게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시릴 노스콘 파킨슨 교수가 정립한 “파킨슨의 법칙”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주제를 사람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 경제 위기는 다양한 변수와 복잡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대중은 간단한 답을 원한다는 것이다.
CNBC가 지난 3월21~23일 미국 전역에서 802명을 대상으로 경제인식와 정치적 선택에 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들은 ‘미국 경제 전반에 대해 최고의 정책을 갖고 있는 대선 후보’로 클린턴과 트럼프를 같은 비율(24%)로 꼽았다. ‘임금을 올려줄 최고의 정책을 펼칠 대선 후보’로도 클린턴과 트럼프를 각각 응답자의 21%가 선택했다.
미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5일(현지시간) 지난달 12~19일 미국 성인 20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대한 발표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미국은 국내 문제에만 신경쓰고, 각국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 미국인 다수가 트럼프의 고립주의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스카치폴 교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다수의 미국인이 트럼프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다수의 미국인들이 그동안 정치에 얼마나 큰 괴리감을 느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