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韓 증시 레벨업 위해 ‘이사 충실 의무 명문화’ 관문 넘어야”

“사법적 리스크로 ‘보신주의’ 우려” vs “알맹이 빠진 개악”…엇갈린 학계

상승 출발한 코스피·코스닥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주식 시세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3.81p(0.15%) 오른 2,475.76으로 출발했다. 코스닥지수는 2.91p(0.42%) 오른 689.03에, 원/달러 환율은 0.1원 오른 1,391.0원에 개장했다. [연합]

[헤럴드경제=신동윤·유동현·김민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기업 이사들에게 주주를 위한 충실의무와 보호 의무를 함께 적용하는 상법 개정안을 최종적으로 확정해 발의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해법 중 하나라며 즉시 ‘환영’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재계에선 크게 반발하고 있는 모양새다.

학계에서도 이번 상법개정안을 두고 찬반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현재 발의한 법안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정문 민주당 의원은 전날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명문화 ▷이사회 구성의 다양화 ▷이사 선임 과정에서 집중투표제 도입 ▷분리 선출 감사위원 이사 수 확대 ▷전자주주총회 방식 도입 등의 내용이 담긴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를 두고 개인 투자자 측에선 ‘주주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란 평가한다.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과 고려아연 유상증자 사태 등 주주가치를 신경 쓰지 않는 국내 기업들의 행보로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도가 실추됐단 분석이 이어지는 상황에 꼭 필요한 움직임이란 것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소수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자행됐던 편법들로 인해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고, 그것이 주가 상승을 가로막는 역할을 지금껏 해왔다”면서 “한국 주식 시장의 레벨업을 위해선 반드시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 명문화란 관문을 넘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속도 조절’을 통해 반대 의사를 강하게 피력 중인 재계의 우려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정 대표의 생각이다.

앞서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 8단체는 “해외 투기자본 먹튀 조장법”이라며 즉각 반대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상법 개정안대로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이 현실화하면 국내 30대 기업(자산 기준) 중 8곳(26.7%), 10개 기업 중 4곳이 이사회의 과반수를 외국 자본에 내줄 수 있다는 조사 결과도 한경협은 제시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기본법인 상법에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등을 담을 경우 사실상 기업 경영진 입장에선 사법 리스크로 인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며 “‘소액주주 보호’란 목표에 맞춰 원 포인트로 조준해 법 개정에 나서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 정 대표도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 명문화의 경우 최우선으로 추진하더라도, ▷이사회 구성의 다양화 ▷이사 선임 과정에서 집중투표제 도입 ▷분리 선출 감사위원 이사 수 확대 ▷전자주주총회 방식 도입 등의 도입은 좀 더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선 이번 상법개정안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이번 상법개정안이 오히려 국내 증시의 ‘밸류업’이 아니라 ‘밸류다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다 장기적인 회사 전략에 집중하는 경영진이 단기적인 주가 차익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소액주주의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경영진이 사법적 리스크 때문에 단기적인 리스크를 질 수밖에 없는 중요 결정을 미루는 ‘보신주의’ 문화가 기업 내부에 자리잡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열린 한 세미나에 발제자로 나선 강영기 고려대 교수는 “소수주주 보호나 소수주주와 대주주 간 이해 상충 리스크를 감독할 필요성은 충분하지만, 상법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의무 인정’ 등의 문구를 추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 되기 어렵다”면서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처럼 공시규정 강화를 통해 주주 간 이해상충 리스크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게 시장 건전성을 높이는 더 효과적 대안”이라고 했다.

학계 일각에선 민주당이 내놓은 상법개정안이 오히려 제대로 된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가로막는 ‘개악’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법개정안에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아닌 ‘보호 의무’를 요구하고 있으며, 부당성 입증 책임조차도 주주에게 넘기는 등의 각종 독소 조항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면서 “현재 발의된 법안대로 통과될 경우에도 실효성에 큰 의문부호가 달린다. 법안 통과를 위한 논의 과정에서 (주주 충실 의무 등이) 대폭 약화할 것이 뻔한 상황 속에, 실효성이 부족한 내용을 토대로 논의가 시작된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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