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보이스피싱, 스미싱 등으로 개인정보를 탈취하고 휴대전화 안에 저장된 ‘신분증 사진’을 재촬영한 신분증 2차 사본으로 비대면 대출까지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규정상 비대면 대출은 신분증 ‘원본’ 촬영이 원칙이지만, 일부 인터넷 은행에서는 재촬영본으로도 대출이 가능해 피해가 커지고 있다.
1심 법원에서 은행의 책임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는 가운데, 서울고등법원에서 은행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2차 사본으로 비대면 인증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명시한 고등법원 최초 판결이다.
22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5부(부장 윤강열)는 보이스피싱 피해자 A씨가 인터넷은행 B사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 명의 대출금을 갚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A씨는 2021년 4월 B은행의 모바일뱅킹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입출금 계좌를 개설했다. 이후 2022년 8월 A씨는 아들을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아 운전면허증 촬영 사진을 전송하고, 스마트폰 원격조종 앱도 설치했다.
보이스피싱범들은 휴대폰을 원격조정해 B은행 앱으로 2억 218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A씨가 보낸 운전면허증 촬영 사진을 재촬영해 업로드했다. A씨는 B사가 본인확인 조치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대출금 2억원에 대한 변제 의무가 없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B사는 신분증 사본을 재촬영한 2차 사본을 이용해 실명확인을 했기 때문에 본인 확인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 모두 A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2차 사본의 제출만으로는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비대면 실명확인방안의 필수적 의무사항을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2022년 8월 당시 2차 사본 식별 기술 도입이 어려웠다는 이유로 금융회사 책임이 가벼워진다고 볼 수 없다. 비대면 실명확인은 금융회사의 영업 편의를 위한 것으로 기술적인 한계로 인한 위험부담을 고객에게 전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명확인증표(원본)는 단시간 내에 무수히 복제될 수 있다. 실제로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을 시도하는 자들이 사본을 대량으로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본을 사진촬영 하도록 하는 방법으로는 사본 소지자가 거래상대방 본인인지 여부를 분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비대면 금융거래 실명확인은 고객이 직접 창구를 방문하는 대면거래 방식을 대체한다. 최대한 대면 거래에 준해 원본 소지를 인정할 정도의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