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지났지만 3040이상 세대, 아련한 추억 젖어 -80년대 어린이들에게 최고 선물로 전성기 누려 -아이 눈높이 변하며 ‘아빠 퇴근길’선물서 사라져 -현재 제과업체서 특별시즌에만 소량 생산판매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과자 종합선물세트’. 이토록 유년의 노스탤지어를 상징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과자 종합선물세트는 이제 ‘아재’와 ‘줌마’가 된 3040세대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말이 됐다.

“아빠의 퇴근길, 자전거 뒤에 싣고 오신 과자 종합선물세트는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형이랑 과자 하나를 두고도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었는데, 어느날은 아빠 손에 두 개의 과자박스가 들려있었던 적이 있어요. 그 행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딸 아이의 아빠가 된 99학번 정수영 씨의 이야기다.

추억의 과자 ‘종합선물세트’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처럼 먹거리가 풍요롭지도 않고, 번듯한 외식 한번 하기도 힘들던 시절. 200원을 주면 새우깡을 사먹고 500원이면 군것질 파티를 하며 세상 부자같던 그 시절. 종합선물세트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만화 캐릭터로 화려하게 포장된 커다란 상자 속에 ‘어떤 과자가 들었을까’라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과자 종합선물세트는 그만큼 흥미로운 역사가 존재한다. 지난 설 연휴기간 아이들은 과자 이상의 선물을 받았겠지만, 3040이상의 세대는 아이들에게 최첨단 장난감을 주면서도 잠깐이나마 옛 추억에 잠겼을 법 하다.

국내 주요 제과업체들은 1960년대부터 과자 종합선물세트를 생산했다. 70년대를 거치며 설날, 추억, 크리스마스 등 특별시즌에는 특수를 맞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경제성장이 무르익었던 80년대에는 아이들을 위한 대표선물로 호황을 누렸다.

롯데제과는 70년대에는 왔다껌, 캬라멜, 맛댕기 스낵을 한 상자에 담았고 80년대에는 아몬드초콜릿, 초이스 비스킷, 커피껌을 포함해 패키지로 판매했다.

추억의 과자 ‘종합선물세트’ 다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한창 잘 나가던 과자 종합선물세트도 쇠락기를 맞았다.

“마이마이, 겜보이, 롤러스케이트가 갖고 싶은 목록 1위를 앞다퉜죠.”

정 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90년대 들어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아이들의 ‘위시리스트’도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패스트푸드점, 빵집이 늘어나면서 굳이 종합선물세트를 사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간식도 다양해졌다. 수요가 떨어지니 업체들은 생산량을 줄였다.

제과업계에 따르면 종합선물세트에 과자를 넣는 작업도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해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도 컸다. 결국 1997년에는 IMF 한파로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리곤 더 이상 퇴근길 아빠의 선물이 되지 못했다.

“어느 순간 동네 슈퍼에서 살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받았던 기쁨을 우리 애한테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그러나 과자 종합선물세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별시즌엔 소량 생산한다.

제과업계 한 관계자는 “주고객층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제품이기 때문에 주문생산을 받거나 어린이날, 명절, 크리스마스 시즌에 한정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판매방식 뿐만 아니라 포장도 변했다. 과거 획일적인 네모 상자를 벗어나 유명 캐릭터 포장을 이용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오리온은 이번 설을 겨냥해 소셜커머스 쿠팡과 제휴를 맺고 ‘오리온 정 파이 과자선물세트’와 고래밥 캐릭터 ‘라두’를 활용한 종합선물세트 등 1만~3만원대로 판매하기도 했다. 롯데제과는 애니메이션 ‘씽’을 이용한 상품을, 크라운제과는 피카추를 활용한 백팩 모양의 종합선물세트를 내놓고 있다.

“아낀다고 맛없는 과자부터 먹다가 오빠한테 다 빼앗기고 양갱만 남아 대성통곡을 한 기억이 있네요. 요새는 백화점가서 양갱을 제돈 주고 사오기도 합니다.”

불혹을 바라보는 주부 이선경(미아동) 씨에겐 종합선물세트는 이렇듯 애틋한 추억이다.

일요일 오전 8시 디즈니 만화영화를 놓쳐 씩씩거리다가 과자 하나에 원초적 기쁨을 느꼈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됐지만, ‘종합선물세트’라는 단어는 여전히 설레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