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시절인 1986년 유럽 순방길에 일본 영공을 통과하면서 일본왕을 “천황폐하”라고 표현한 사실이 외교 문서 공개 결과 드러났다.
외교문서공개에 관한 규칙(부령)에 따라 11일 비밀 해제된 1986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6년 4월5일 일왕에게 “폐하. 본인은 아름다운 귀국 영공을 통과하면서 대한민국정부와 국민을 대신하여 폐하께 정중한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본인은 1984년 본인의 귀국 방문 시 폐하와의 만남을 기쁜 마음으로 회상하면서, 이 기회를 빌어 폐하의 건안과 귀왕실과 귀국민의 무궁한 번영과 행복을 기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재임 당시 아키히로 일본왕을 “일본 천황”이라고 불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9년 9월15일 언론 인터뷰에서 일왕의 방한 문제를 언급하면서 “일본 천황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고, 한국을 방문하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방문하느냐,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당시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도 “일본 천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내년에 일본 천황 방한이 이뤄지면 과거사에 종지부를 찍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가 알려졌다.
천황 표현은 1998년 10월 국빈으로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 2003년 6월 역시 국빈으로 방일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쓴 적이 있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상대국 호칭대로 불러주는 것이 외교 관례인 바, 앞으로는 정부가 ‘천황’ 호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5년 연두기자회견에서 “일본에서는 천황이라고 부르지요”라고 언급했다.
‘한일 합방으로 일본이 좋은 일도 했다’는 에토 다카미 총무청 장관의 1995년 11월 발언에 장쩌민 중국 주석과의 정상회담 후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말한 김영삼 전 대통령도 1994년 방일 당시에는 일왕 주재 만찬에서 ‘천황폐하’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역대 대통령의 ‘천황 폐하’ 표현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천황 폐하 표현 논란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는 일본과 우리 민족의 뼈아픈 굴욕의 역사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천황은 일본인의 정서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본만의 칭호인데 굳이 우리가 그 표현을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것. 일본 ‘천황’ 개념의 원형은 중국 ‘천자’ 사상에 근거를 둔 것으로, 오히려 중국 ‘천자(하늘의 아들)’보다 더 높은 존재라는 표현으로 풀이된다.
한일위안부합의,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간 갈등 양상이 이어지고 있어 이런 논란은 향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측은 “1998년 10월 ‘천황’ 호칭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밝힌 이후 계속 사용해 온 상황에서 다시 ‘일왕’ ‘일황’ 등으로 호칭을 회귀할 경우 호칭문제를 둘어싼 논란이 재연돼 한일 우호 협력관계에 불필요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이어 “국제외교상으로도 상대국 호칭을 불러주는 것이 관례”라며 “한자 사용 국가인 중국과 대만에서도 일본 천황의 공식 호칭으로 ‘천황’을 사용하고 있고,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필리핀 등 영어권 국가에서는 황제라는 뜻의 ‘Emperor’를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