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제공 어렵다”는 韓에 불만 표시

외교부 “간접 서면 답변” 역제안도 거부

정상 통화에서도 ‘망신’…외교 마찰도

[단독]뉴질랜드 경찰 “韓에서 아무 자료 못 받아…진실 원하면 협조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청와대에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 전화 통화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과거 현지 대사관 근무 당시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 외교관에 대한 수사를 두고 뉴질랜드 경찰이 “한국 정부로부터 협조를 받지 못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뉴질랜드는 총리까지 나서 CCTV 영상 제공 등 수사 협조를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외교 관례상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양국 간 신경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31일 뉴질랜드 경찰 당국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사실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면 한국 정부가 우선 수사에 협조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현재 한국 대사관에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협조 방안을 요청한 상태지만, 받은 것이 아직 없다”며 “수사를 위한 협조 요청은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수사 진행 상황이나 요청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앞서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 브리핑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토대로 이 사안이 해결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고 있다”며 “(정부의) 무관용 원칙은 계속 지키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 풀이된다. 뉴질랜드 외교부도 같은 날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의혹 수사와 관련해 “모든 외교관은 주재국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에 실망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질랜드 경찰은 A 외교관과 같은 시기에 근무했던 동료 직원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직접 조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협조 요청을 했다.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의 공관 내 CCTV 영상도 함께 요청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외교 관례상 외교관에 대한 직접 수사를 허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으로, CCTV 영상 제공에 대해서도 보안상 이유를 들어 제공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신 외교부는 뉴질랜드 경찰 측이 질문지를 작성하면 동료 직원에게 서면 형태로 답변하도록 하는 방안을 역제안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관을 현지 경찰이 직접 수사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라며 “이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뉴질랜드 양국 모두 양보 없이 평행선을 달리며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당장 의혹의 당사자인 A 외교관은 뉴질랜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2018년 다른 국가로 부임해 업무를 수행 중으로, 당사자가 직접 뉴질랜드로 가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는 이상 외교부가 수사 협조를 강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A 외교관은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지난 2017년 뉴질랜드 국적의 대사관 직원을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외교부는 A 외교관이 근무지를 옮긴 직후 감사를 통해 성추행 사실을 인지했고, 조사 끝에 경징계에 해당하는 ‘감봉 1개월’ 처분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반면, 뉴질랜드 경찰은 A 외교관이 떠난 이후 피해자의 고소를 접수해 현재까지 수사를 진행 중이다.

수사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며 성추행 논란은 양국 간 외교 마찰로 번지는 모양새다. 뉴질랜드는 저신다 아던 총리가 지난 28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 통화에서 직접 외교관 성추행 문제를 언급하며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관계부처가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처리할 것”이라고 짧게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총리까지 나선 요청에도 우리 정부가 협조에 난색을 보이면서 뉴질랜드 내 여론도 악화된 상황이다. 앞서 뉴질랜드 뉴스허브 방송은 A 외교관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며 “한국 정부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수사당국이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