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다니지 않겠다 했을 뿐 따돌리지 않았다”
법원 “인격권 침해하는 고의성 따돌림 단정 어려워”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집단 따돌림 이른바 ‘왕따’ 가해자로 몰린 여고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교장 상대로 벌인 소송에서 승소했다.
인천지법 행정1-2부(이종환 부장판사)는 A양이 인천 모 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상대로 낸 서면사과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A양에게 내린 서면사과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 비용도 학교가 모두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A양은 2019년 5월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를 집단으로 따돌렸다는 이유로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에 회부돼 ‘서면사과’ 처분을 받았다. 같은 반인 B양이 “A양을 포함해 모두 8명이 학교 곳곳에서 따돌리는 말과 행동을 했다”며 담임교사를 거쳐 생활 담당 교사에게 신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양은 이에 불응해 학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양은 같은 해 4월 학교 통학용 승합차 안에서 한 친구에게 “B양과 같이 다니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은 있지만 B양을 따돌리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같은 해 6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고 A양의 행위가 학교 폭력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심의에 출석한 위원 6명 가운데 5명이 이 같은 의견에 동의했고 학교도 이를 받아들여 A양에게 서면사과 처분을 했다.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은 나머지 학생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징계 조치를 하지 않았다.
A양은 학교 측의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인천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에서 기각됐고 끝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양은 행정소송에서도 “고의로 친구를 집단 따돌림 한 게 아니어서 학교 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학교가 오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도 학교의 판단과 달리 A양의 당시 행위가 고의성이 짙은 따돌림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돌림'은 학교 내외에서 2명 이상이 특정인을 대상으로 지속해서 신체적·심리적 공격을 했을 때 상대방이 고통을 느끼는 행위"라며 "따돌림이 학교폭력에 해당하려면 고의성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A양과 B양은 평소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자주 어울리는 관계였다가 서로 어울리기 불편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A양이 통학용 승합차에서 한 발언은 제삼자에게 (당시 함께 있지 않은) B양에 대한 태도를 밝힌 것에 불과하고 인격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A양이 B양의 인격을 무시하거나 모독하는 언행을 다른 학생들과 함께했다고 단정할 만한 구체적인 정황도 부족하다”며 “학교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