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재미 삼아 세어보자.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신경 써서 세보면 정말 생각보다 많다. 대로는 대로대로, 골목길은 골목길대로 일상에 뗄 수 없는, 하지만 굳이 고개를 숙여야만 보이는 바로 그것, 하수구다. 내친김에 서울 용산구 후암동 일대 하수구를 하나씩 살펴봤다. 30여곳 하수구를 살펴본 결과, 어김없이 눈에 띄는 게 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낙엽, 그리고 낙엽을 장식(?)하듯 어김없이 등장하는 바로 너, 담배꽁초다.
뭐래?
담배꽁초가 아예 없는 하수구는 정말 찾을 수 없었다. 오기가 생겼을 정도. 심지어 바로 옆 재떨이가 있는 곳조차 이를 비웃듯 어김없이 꽁초가 나왔다. 담배를 피운 뒤 손에 꽁초를 들고 헤매다 ‘굳이’ 하수구에 버리는 이도 목격했다. 왜 그럴까? 흡연자 A씨의 해명이다.
길에다 버리면 청소에 힘들까 봐, 어차피 하수구는 쓰레기가 모이잖아요.
담배꽁초는 통상 종이류, 혹은 솜 등의 재질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담배꽁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필터는 ‘셀룰로스아세테이트’란 플라스틱 재질로 돼 있다. 섬유 외에 필름, 플라스틱 등에도 쓰이는 재질이다. 담배꽁초를 하수구에 버리는 건 플라스틱을 하수구에 버리는 셈.
플라스틱을 길에 버리는 것도 문제겠지만 그 장소가 하수구라면 상황은 좀 더 심각하다. 담배꽁초를 더한 빗물은 하수구를 통해 결국 강으로, 바다로 가는 여정이다. 물과 함께 긴 여정 동안 일부 용해되고 일부 섞이며 미세플라스틱 주범이 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도심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 중 바다로 갈 가능성이 가장 큰 게 담배꽁초”라고 지적한다.
미세플라스틱의 역습은 이미 곳곳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물에 퍼진 미세플라스틱은 생태계 먹이사슬을 타고 축적돼 결국 인간에 돌아온다. 최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동물실험을 통해 어미가 섭취한 초미세플라스틱이 모유 수유를 거쳐 자손에게 전달돼 뇌와 장기에 축적된다는 사실을 확인, 발표했다.
오늘 하수구에 버린 담배꽁초와 그 안에 담긴 미세플라스틱이 하수구를 거쳐 강과 바다, 물, 먹이사슬 등을 거쳐 다시 우리의 몸으로 돌아오는 것. 심지어 그 꽁초의 질긴 역습은 내 아이들까지 이어진다.
우리가 버리는 담배꽁초는 얼마나 될까? 통계청과 질병관리청 등의 통계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흡연율(2019년 기준)은 21.5%. 19세 이상 인구수(4392만9147명)를 기준으로 따지면 흡연자는 944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흡연자의 하루평균 흡연량은 12.4개비. 종합하면, 하루에 쏟아지는 담배꽁초 추정치는 117115105.9개비. 1억 개비가 넘는다. 하루에만. 그중 10%만 하수구에 버려져도?
뭘해?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근원적 해법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꽁초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적어도 하수구는 피하자. 담배는 취향이지만 꽁초 투척은 최악이다. 최근 제주환경운동연합의 해안 쓰레기 줍기 ‘제주줍깅’ 활동 결과, 많이 수거된 쓰레기 1위가 ‘담배꽁초’(22.9%)였다.
일각에선 담배꽁초를 수거해 재활용하는 업체도 있다. 글로벌 재활용기업 테라사이클이 대표적 예다. 담배필터, 포장지, 포장 종이 등을 나눠 플라스틱으로 재가공하거나 퇴비 등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한 담배꽁초 전용수거통도 있다. 담배꽁초 1파운드를 모아오면 담배회사가 1달러를 기부하는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당연히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물론 금연이며, 어렵다면 최소한 쓰레기통에 꼭 버리는 습관. 또 하나, 흡연자만큼 담배회사의 책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내흡연이 대부분 금지되면서 담배꽁초 쓰레기는 현실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기업이 꽁초 수거 시스템을 마련하거나 회사에 생산자책임재활용(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제도나 보증금제도 등을 적용해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