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조건부 승인 잠정’ 결론
슬롯 집중도 높이는 해외와 달라
내부선 “구조조정 우려” 목소리
해외 기업결합 심사 악영향 우려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기업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으로 잠정 결론을 내면서 양측 항공사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정위 심사가 지연되며 인수 절차에 제대로 돌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슬롯(특정 시간대에 이착륙할 권리) 반납과 운수권 재배분이라는 ‘페널티’가 먼저 부각됐기 때문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 등의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검토한 뒤, 공정위와 협의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공정위는 지난 29일 관련 보고서를 양사에 발송했다. 대한항공이 올해 1월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한 지 1년 만이다.
공정위는 두 기업 계열사를 포함한 5개사(대한항공·아시아나·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가 운항하는 250여 개 노선을 분석한 결과, 두 회사가 결합하면 인천~뉴욕·로스앤젤레스, 부산~나고야·칭다오 등 총 10개 노선이 100% 독점 노선이 된다고 파악했다.
공정위는 슬롯 일부 반납, 운수권 재배분 등으로 독점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승인 슬롯, 운수권 조정 전까지 운임 인상 제한도 내걸었다. 다만 반납이 필요한 노선이나 슬롯 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대한항공은 향후 공정위와 협의를 통해 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 업계는 공정위의 결정이 통합항공사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해외 항공사들은 대형 항공사 위주로 핵심 공항에서 슬롯 집중도를 높이고 있는데 공정위의 결정은 이를 역행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두 항공사가 합병할 경우 인천공항 슬롯 점유율은 40%(대한항공 23%·아시아나 16%) 수준이다.
반면 미국 델타항공은 애틀랜타공항 슬롯 79%를, 아메리칸항공은 댈러스공항 슬롯 85%를 점유하고 있다. 루프트한자의 프랑크푸르트공항 슬롯 점유율은 62%, 영국항공의 런던 히드로 공항 슬롯 점유율은 50% 달한다.
한 업계 종사자는 “국내 항공산업은 지리적 입지를 토대로 허브공항 운영을 통해 환승객을 유치해 왔다”며 “통합 항공사 보유분 슬롯이 유실되면 허브공항으로서의 이점과 촘촘한 환승 네트워크의 활용은 의미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결정이 구조조정을 야기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앞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인수를 추진하면서 인력 구조조정 및 노선 통폐합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업계에선 슬롯과 운수권을 반납할 경우 항공편 운항이 줄어 중복 인력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외항사들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가 독점으로 지적한 노선들은 대부분 장거리 노선이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에서 장거리 운항이 가능한 비행기를 가진 항공사는 드물기 때문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황에서 신규 진입도 쉽지 않다.
미국·유럽연합(EU)·중국·일본·영국·싱가포르·호주 7개국의 기업결합 심사도 변수다. 대한항공은 공정위와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가 지연되자 아시아나 주식 취득 일정을 이달 31일에서 내년 3월 31일로 연기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국 항공사들이 한국 항공시장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스스로 무리한 제한을 둬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꼴”이라며 “자국 내에서 이미 독점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아직 기업결합 심사가 완료되지 않은 국가의 결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