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0,000,000개’ [헤럴드경제 = 김상수·최준선 기자]. 한 해 국내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컵 개수다. 84억개를 남한 전체 인구가 썼다고 가정하면, 한 명당 1년에 약 160개를 사용한 꼴. 가장 흔하게 쓰면서 가장 흔하게 버리고 있는, ‘플라스틱 공화국’의 상징 격이다.
‘300원’. 일회용컵 하나당 지불해야 할 보증금 액수다. 오는 12월 2일부터 세종시와 제주도에 시범 적용된다.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회용컵 음료를 구매할 때 컵 1개당 300원 보증금을 추가 지불한다. 추후 이를 반납하면 300원 돌려받는다.
300원이 과연 84억개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 숫자를 보자. ‘64%’. 유리병 재활용률이다. 1985년 이후 국내 소비자는 소주나 맥주 등을 구매할 때 공병 보증금(70~350원)을 추가 지불하고 있다. 소매점에 공병을 반환하면 이 금액을 돌려준다.
64% 재활용률은 보증금제의 힘이다. 현재 일회용컵 회수율은 5%에 불과하다. 84억개 중 79.8억개는 그냥 버려진다. 거리에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컵이 돈이라면? 시작은 낯설겠지만, 효과는 분명하다.
시행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난 2020년 6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하면서 이미 도입을 예고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원래 6월 10일 시행하기로 했으나 여러 반발 속에 6개월 유예됐다. 이마저도 전국이 아닌 제주도와 세종시에 한해, 교차 반납이 아닌 해당 브랜드에서만 반납하는 식으로 점차 축소됐다.
제주도와 세종시만이라도 보증금제는 안착할 수 있을까? 한 달을 앞두고 직접 세종시 현장을 찾아갔다. 현장에서 만난 20여명 시민 중 보증금 액수나 반환 방식 등을 온전히 알고 있는 이는 한 명도 없었고, 절반가량은 보증금제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매장 점주들도 “본사 지침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며 손사래 쳤다.
세종시, 제주도의 제도 안착은 중요하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전 세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소속 MIT 테크놀로지리뷰(MIT Technology Review)가 발표한 그린 퓨처 인덱스(Green Future Index 2022)에서 한국은 76개국 중 10위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 지수는 저탄소·지속가능성 등을 평가하는 지수다.
이들은 선정 이유와 관련, ‘일회용 커피컵에 보증금제를 도입해 아시아 최대 카페 시장의 폐기물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세계 최고의 재활용 경제국가 중 하나(Rated one of the world’s best recycling economies)’라고 명시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한국의 호평 주된 이유다.
실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법제화한 건 전 세계에서 한국이 최초다. 환경부 관계자는 “외국에도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법률로 시행하는) 이런 사례는 없다”고 전했다. 세종시·제주도의 성공은 전국 확산의 동력이 되며, 나아가 전 세계 플라스틱 절감 대책으로 주목받을 수 있다. 한 달 뒤, 성패가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