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permacrisis’는 없다

예전에 어머니들은 ‘파마’한다고 하셨다. ‘볶는다’고도 했다. ‘파마’. 주지하다시피 영어 ‘permanent(영구적인)’를 입에 붙게 줄인 말이다. 머리를 계속(영구적으로) 구불구불한 상태로 볼륨감 있게 하겠다는 거다.

영국 콜린스 사전이 ‘permacrisis(영구적 위기)’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정치 불안정, 전쟁, 경기침체 등 복합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경고성 단어다. 하지만 영원한 위기는 없다. 특히 경기는 사이클과 한 단어로 묶일 정도로 주기를 탄다. 이론적으로도 검증돼 40개월 주기의 키친 사이클(Kitchin Cycle), 10년 주기의 주글라 사이클(Juglar Cycle), 20년 주기의 쿠즈네츠 사이클(Kuznets Cycle), 45~60년 주기의 콘트라티예프 사이클(Kondratiev Cycle) 등이 경제 교과서에 언급될 정도다.

이를 거꾸로 얘기하면 경기를 늘 호황이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고, 머리로 치면 순탄하고 곧게 만드는 스트레이트 파마라는 메뉴가 경기대책에는 없다는 얘기다. 그래도 어머니들이 부스스한 머리를 그냥 두지 않듯, 경제 주체들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정부, 기업, 가계가 딱 한 가지씩만 제대로 해보는 건 어떨까. 영구적 위기라는데, 정말 간절하게 딱 한 가지씩만 말이다.

정부는 뒷짐 좀 줘졌으면 좋겠다. 물론 복지부동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과도하게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컨대 경쟁국 대비 높은 법인세로 모래주머니 채우고, ‘노란봉투법’으로 손 묶고, 수십년 전 기준으로 스타트업 발목 잡고. 이런 것들만 안해 줬으면 한다. 3인4각으로 뛰는데, 한 사람이 엇박자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기업은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견은 됐으나, 강도가 생각보다 센 3고(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에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4대 그룹급도 회사채 발행이 여의찮아 기업어음(CP)에 기댈 정도로 자금경색이 심각한 상황이다. 최고경영자(CEO)와 재무책임자(CFO)들은 하루하루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위기관리에 방점이 찍힌다. 하지만 어렵게 선점한 미래먹거리 분야를 강화할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위기 때 비용절감에 매몰되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 삼성의 반도체·바이오·6G, SK의 반도체·배터리·바이오, LG의 전장·배터리, 현대차의 전동화·친환경차, 한화의 태양광·방산·우주항공 등 주요 그룹의 미래 승부수를 한 단계 도약시킬 천금 같은 시기가 지금일 수 있다.

가계는 냉철해졌으면 좋겠다. 경제는 심리다. 신호 하나에 냉온탕을 오간다. 여기에 휩쓸리면 소비, 투자 등 경제활동이 위축되거나 망가지는 건 금방이다. ‘영끌’ ‘빚투’의 부메랑이 지금 돌아오고 있지 않나. 내년 상반기까지, 길게는 내년 말까지 엄동설한을 각오해야 한다. 요새 젊은이들은 옆머리를 붙여 쫙 가라앉히는 다운펌을 한다. 지금 경제도 딱 그 형국이다. 일부러 가라앉히는 건 아니지만, 하향세가 확연하다.

한발 떨어져서(정부), 위축되지 말고(기업), 냉철하게(가계) 대응하자. 영원한 위기란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