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오픈AI가 텍스트에 특화한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를 선보인 지난해 12월 이후 2개월여 만에 벌어진 대소동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세상만사가 생성형 AI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면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맞붙고, 중국의 바이두가 가세했으며, 한국의 네이버와 카카오도 뛰어들어 ‘AI 세계대전’이 눈앞의 현실이 됐다.

40년 전인 1983년 2월 8일,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일본 도쿄에서 한국의 반도체사업 진출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도쿄 선언’이다. 미국 인텔은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었다. 그만큼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다. 주지하다시피 삼성은 그 후 ‘반도체 신화’를 썼다. 1993년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혁신 선언)’은 도약의 뜀틀이 됐다. 삼성은 설계와 자체 생산에 위탁생산(파운드리)까지 하는 종합반도체기업으로 성장했고,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는 한국 산업의 쌀로, 또 ‘수출 한국’의 견인차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불모지였던 반도체산업에 도전정신 하나로 뛰어든 기업인, 처음에는 우려했지만 결국 적극 지원에 나섰던 정부 그리고 경쟁국인 일본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견제 등 삼박자가 원동력이 됐다.

지금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다. 글로벌 수요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고 적자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경쟁국인 대만과 일본은 정부의 적극 지원 속에 한국과의 격차를 벌리거나 추격하려는 기세가 등등하다.

AI 시대의 도래는 반도체산업에 커다란 기회요인이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4차 산업혁명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실리콘 반도체이고, 당분간 이를 대체할 물질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반도체 불패론’을 내세운다. 저장 수요 증가로 D램의 수요가 무궁무진해 실리콘 메모리 세상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되돌아보니 40년 전의 도전과 혜안이 새삼 놀랍다. 이제 AI를 필두로 4차 산업혁명의 시장이 열렸으니, 삼박자를 다시 맞춰보자. 미국이 경쟁국 중국의 반도체를 강하게 견제하고 있는 건 주어진, 행운의 옵션이다. 그럼 남은 건 두 가지. 이재용 삼성 회장은 자신만의 혼이 담긴 제2의 ‘도쿄·프랑크푸르트 선언’의 의지가 있는가.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과 달리 경쟁국 못지않은 규제혁신으로 화답할 준비가 돼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