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땅 일회용품뿐” 장례식장 쓰레기봉투 열어보니 [지구, 뭐래?]
서울 시내 한 장례식장에서 나온 일회용 및 일반쓰레기들. 주소현 기자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음식 쓰레기만 빼고 나머진 그냥 일회용 식탁보에 다 뭉쳐서 버려요. 캔이라도 분리배출하면 다행이죠.”

조문객이 하나둘 모여드는 지난 15일 저녁. 서울 한 장례식장 지하주차장. 파란색 대형 비닐 안에 장례식장 빈소에서 막 버려진 쓰레기들이 담겼다. 안을 살펴봤다.

벌건 국물이 물든 나무젓가락과 찌그러진 스티로폼 접시, 포개진 종이 그릇, 커피 믹스 껍질들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대부분이 일회용품 쓰레기들이다.

심지어 일부 봉투엔 캔이나 병 등까지 섞였다. 이후 병원 직원들이 이 봉투에서 캔, 패트병, 유리병 등을 골라냈다. 나머지 일회용품 쓰레기들은 75ℓ 초대형 종량제 봉투에 담긴다. 그렇게 산더미 같은 일회용품 쓰레기들이 이내 1t 트럭에 차곡차곡 쌓였다.

구석 수납 상자엔 흰 다회용기 그릇이 몇개 모여 있었다. 원래는 일회용 접시 대신 써야 했을 것들. 하지만 구석 창고 비품처럼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몽땅 일회용품뿐” 장례식장 쓰레기봉투 열어보니 [지구, 뭐래?]
서울 시내 한 장례식장에서 나온 일회용 및 일반쓰레기들. 주소현 기자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까지 보증금 내며 하나라도 안 쓰는 시대, 하지만 일회용품의 ‘성역’으로 남아있는 곳이 있다. 바로 장례식장이다.

조문 갔던 기억에서 슬픔을 걷어내고 밥상을 떠올려보자. 일회용 식탁보, 일회용 육개장 그릇, 일회용 밥 그릇, 일회용 편육 접시, 일회용 전 접시, 일회용 떡과 과일 접시, 일회용 수저, 일회용 젓가락, 일회용 컵. 단 1명의 조문객이 오더라도 상엔 모두 일회용품이 깔린다. 이것만 세도 10개가 넘는다.

조문객이 자리를 뜨면 간단히 음식만 빼낸 뒤 모두 일회용 식탁보로 감싼다. 식탁보는 일회용 비닐 격이다. 그 안엔 음식물이 묻은 각종 일회용품이 모두 모인다. 그리고 그대로 한편 파란색 대형봉투에 버린다. 조문객 몇 테이블만 받다보면 금새 봉투는 일회용 쓰레기로 가득찬다.

“몽땅 일회용품뿐” 장례식장 쓰레기봉투 열어보니 [지구, 뭐래?]
빈소 상차림 [인터넷 캡처]

“보통 조문객이 100명 온다 하면 75ℓ 봉투 하나를 채우고 3분의 1이나 절반 정도 더 채울까요. 얼만큼 차곡차곡 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1명 당 쓰레기 1ℓ 꼴로 나오는 셈이죠.

이날 만난 상조회사 직원의 설명이다. 음식물이 묻어버린 수저와 밥그릇, 국그릇 등은 깨끗이 씻지 않는 한 플라스틱이든, 종이든, 스티로폼이든 모두 재활용이 불가하다.

“몽땅 일회용품뿐” 장례식장 쓰레기봉투 열어보니 [지구, 뭐래?]
서울 시내 한 장례식장에서 나온 일회용 및 일반쓰레기들. 주소현 기자

이렇게 우리가 쏟아내는 장례식 일회용품 쓰레기는 총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도 어렵다. 다만 일부 연구 결과로 짐작할 뿐이다.

환경부에서 2014년 발표한 일회용품 규제 관련 연구에 따르면, 연간 전국의 장례식장에서 쓰는 접시류 사용량만 연간 약 2억1000만개에 이른다. 접시만 이 만큼이다. 일회용 접시 모든 사용량 중 5개 중 1개 꼴이 장례식장용이다.

한때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 사용 금지가 추진되기도 했다. 하지만 8년 째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애도 공간까지 환경 규제를 들이대기 어렵고, 전통적인 장례 문화를 단기간에 바꾸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반발 때문이다.

작년 말 열린 국회 환경법안 심사소위에선 장례식장 내 일회용품 사용 규제 법 조항을 아예 없애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결국, 환경부의 제안대로 장례식장 전체를 일회용품 사용 규제 대상 업종으로 규제하되 시행일을 3년 미루는 방안으로 절충됐다.

“몽땅 일회용품뿐” 장례식장 쓰레기봉투 열어보니 [지구, 뭐래?]
지난해 말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4차 환경법안 심사소위 회의록 중 일부 발췌 [국회 자료]

일부 지역이나 공영 장례식장 등에선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시범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효과는 분명했다. 김해시는 작년 7개월 간 장례식장 3곳이 일회용기 대신 스테인리스 다회용기를 사용한 결과, 630건의 장례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 22t(72%)이 줄었다고 밝혔다.

다만, 막상 현장에선 어려움이 상당한 분위기다. 다회용기와 일회용품 중 상주가 선택하는 구조인데, 다회용기를 이용하려는 상주들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규모의 경제가 안 되고, 다회용기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에 비용이 많이 든다.

경기도 소재 한 공공 장례식장은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기 세척, 소독 및 대여·수거 등을 위탁용역해 운영하고 있다. 이 관계자의 얘기다.

“하루 4만~5만 인분 규모의 다회용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정도로는 빈소 3~4곳 정도 밖에 못 쓰거든요. 하지만 수요가 많지 않다보니 예산도 부족해 더 늘리기도 힘들어요.”

다회용기 사용을 적극 권장하던 사업 초반만 해도 일회용품 배출량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이후 일회용품 사용 금지도 보류되는 등 분위기가 바뀌면서 애써 시작한 사업은 다시 힘을 잃고 있다.

“너도나도 친환경” 말만 번지르한 기업 광고, 12억 벌금폭탄 맞을라 [지구, 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