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에 골수 이식 10년 투병
“한국인 깊은 감성 가진 민족”
10차례 내한...아리랑 연주도
16개 앨범 1500만장 이상 판매
투명한 음색으로 ‘치유의 음악’을 들려주던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6일(현지시간) 미국 버라이어티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윈스턴이 지난 4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윈스턴 유가족은 그가 희귀 혈액암의 일종인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을 진단 받고, 지난 2013년 골수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후 최근까지 갑상샘암, 피부암 등 10년 간 병마와 싸운 윈스턴은 수면 중 고통 없이 영면에 들었다.
유가족은 추모 글을 통해 “조지는 암 치료 중에도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고 녹음했으며 그의 열정에 충실한 채로 남아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 1949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미시시피 플로리다 등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지역에서 자랐다. 대학에선 사회학을 공부하다 자퇴했다.
고인의 음악적 토대는 그가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던 뉴올리언즈의 알앤비(R&B)와 소울, 블루스 아티스트에게서 찾는다. 오르간 연주자였던 윈스턴이 어쿠스틱 피아노를 시작한 계기도 뉴올리언즈의 리듬 앤 블루스 피아니스트인 제임스 부커, 헨리 버틀러 등의 즉흥 연주에 매료된 학창 시절 이후부터다.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67년 그룹 ‘도어스’ 음반을 들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웠으나, 음악을 하기로 결심한 이후 독학으로 마스터하다시피 하며 피아노를 다시 익혔다. 기타와 하모니카 등 다양한 악기도 섭렵했다.
고인은 깊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연주하는, ‘자연과 공명하는’ 피아니스트다. 그의 첫 음반은 1972년에 나왔다. 민요, 블루스, 재즈 음악에 자신의 고향인 미국 서부 몬태나의 대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담아 서정적인 피아노를 들려줬다.
1980년에 발매한 ‘가을(Autumn)’을 시작으로 한 계절 연작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가을’은 물론 1982년 ‘겨울에서 봄으로(Winter to Spring)’가 각각 100만장 이상 팔렸다. 서정적인 멜로디의 피아노 곡 ‘생스기빙(Thanksgiving)’, ‘요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등이 수록된 ‘디셈버(December)’ 역시 1982년 발매된 후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플래티넘’ 앨범으로 기록됐다.
특히 ‘생스기빙’은 피아노 연주의 고전으로 평가 받으며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사계절을 담아낸 이른바 ‘계절 시리즈’는 1991년 나온 ‘서머(Summer)’로 마침표를 찍는다.
1994년 발표한 ‘포레스트’는 고인의 자연을 향한 경의를 담은 앨범으로, 그래미 ‘최우수 뉴에이지 앨범’상을 받았다. 이 앨범을 비롯해 ‘서머’ ‘플레인스(Plains)’ 등 6개의 앨범이 빌보드 차트 뉴에이지 부문 1위에 올랐다.
음악을 향한 고인의 열정은 투병 중에도 식지 않았다. 지난해 5월엔 잠들 무렵부터 동이 틀 때까지의 감상을 담은 16번째 솔로 앨범 ‘밤’을 발매했다. 지금까지 총 16개의 음반을 냈고, 전 세계에서 1500만 장 이상 팔려나갔다.
대중에겐 뉴에이지 음악가로 알려져 있으나, 그는 자신의 음악을 뉴에이지 장르에 한정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고인은 스스로를 ‘자연주의 피아니스트’로 불렀다. 그는 “자연과 지구 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악들을 사랑하고, 그것을 나의 연주로 표현한다”고 말했다.
고인의 음악은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이에 한국에 대한 고인의 애정은 각별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디셈버’(1982)는 국내에서만 1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1997년 첫 내한 이후 총 10차례 내한 공연을 가지며 한국 관객과 만났다. 1998년 방한 당시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겪은 한국을 위해 출연료 전액을 ‘실직자를 위한 기금’으로 전달했다. 1999년 선보인 ‘플레인스’ 앨범의 보너스 트랙엔 ‘아리랑’을 연주해 담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9년 내한 공연을 앞두고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세계의 많은 나라들을 사랑하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깊은 정서’를 좋아한다”며 “특히 한국 전통음악은 표현이 매우 풍부해 좋아한다. 한국 사람들은 좀 더 깊은 감성을 가지고 있는 민족인 것 같다”고 말했다.
생전 마지막 몇 년의 활동은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유족들은 “조지는 기아 극복 기금 마련을 위해 라이브 연주를 이어갔고, 콘서트 수익금은 모두 지역 푸드뱅크에 기부했다”고 전했다. 이에 고인에 대한 추모의 뜻은 구호단체 ‘피딩(feeding) 아메리카’, 암 치료 시설 ‘시티 오브 호프 암센터’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등에 기부를 통해 전해달라는 게 유족 측 전언이다. 그간 앨범 수익금을 9·11 테러 피해자 단체, 태풍 카트리나 피해자 단체, 기아 구호 단체 등 다양한 곳으로 전했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음악 활동을 이어온 고인의 유지이기도 하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