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부엌]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식대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썰도 한 술 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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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한국인이라면 학창 시절 카레를 안 먹어본 사람이 없을 듯합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급식 단골 메뉴여서 그런지 카레는 군장병들이 꺼리는 음식으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2018년 국방부는 장병들을 상대로 급식 메뉴 만족도를 조사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급식 혁신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반영해 2019년부터는 카레소스 공급을 18회에서 10회로 줄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퇴근 후 부엌’에서는 카레의 변천사를 들려드립니다. 또 집밥 카레 레시피와 급식 카레를 잊게 만드는 ‘야매 푸팟퐁 커리’ 레시피도 함께 소개합니다.
[요리 썰]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개화가 시작되며 각종 새로운 음식들이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카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짜장면과 카레라이스를 비교하자면 짜장면이 조금 더 일찍 조선에 상륙했지만 사실 공공기관, 군대 등 단체 급식 메뉴로 굳어진 건 ‘카레’가 먼저입니다.
1932년 6월 7일자 동아일보 2면 기사에는 보면 독립 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취조실 점심 메뉴로 카레를 제공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 이후 경찰에 붙잡힌 안창호는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호송돼 취조를 받습니다. 기사에서는 “이날 동검사국 부근에는 서대문 경찰서의 서장이 사복 경관대를 인솔하고 와서 삼엄한 경계를 하였으며 12시에는 법원식당에서 카레 세 그릇을 가져다가 안창호 등 세명의 점심으로 제공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껏해야 1950년대 이후에나 대중화됐을 법한 카레가 일제강점기에도 흔한 음식이었다는 점이 의외입니다. 카레가 어떻게 한국에서 일찍 대중화될 수 있었는지는 카레의 발자취를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짜장면은 1890년대 인천항에서 산둥성 출신 중국인 노동자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면, 카레는 1900년대 초 일본을 통해 건너왔습니다. 19세기 말 일본의 문헌에서는 카레를 ‘라이스카레’라고 불렀습니다. 언제부터 일본에서 카레를 먹었는지에 대한 주장은 분분하지만, 그 중 하나는 1873년 일본 육군의 유년학교에서 매주 토요일을 ‘카레의 날’로 정하면서 라이스카레가 널리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육군에 이어 해군에서도 카레의 날을 지정했습니다.
당시 일본 해군은 각기병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장기 항해에 나설 때마다 해군의 약 3분의 1이 각기병을 앓았을 정도였습니다. 이 병은 비타민 B1이 부족할 때 생기는 병으로, 흰 쌀밥만 먹을 때 자주 발생합니다.
마침 일본은 1902년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고 양국 사이의 군사 교류를 적극 추진했습니다. 영국 해군을 시찰하던 일본 해군은 영국 해군은 각기병 발병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점을 포착하고 영국 수병들이 먹는 식사를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그러다 병사들이 밥과 함께 먹었던 카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커리는 인도에서 즐기는 향신료였지만 18세기 영국 해군에서는 분말 형태의 함상용 식량으로 개량됐습니다. 밀가루에 버터를 넣고 볶아 만든 루에 커리 가루를 풀어 수프처럼 먹은 것이죠. 밀가루와 향신료가 들어가다 보니 비타민 B1이 풍부했고 쌀밥과 장아찌 반찬에 비하면 균형 잡힌 메뉴였습니다. 이에 일본 해군은 1908년 해군조리술참고서, 육군은 1910년 군대조리법에 각각 카레라이스를 포함시키기까지 합니다.
일본에서 라이스카레가 음식점의 메뉴로 등장한 시기는 1877년입니다. 도쿄의 서양음식점 후게쓰도에서 일본 최초로 커리 파우더로 만든 소스를 쌀밥 위에 올린 라이스카레를 팔았습니다. 서양음식점에서 당시 커리는 ‘양식’에 속했습니다. 인도에서 출발한 요리지만 영국을 거쳐 영국식 커리가 전해진 것입니다.
1903년 일본에서도 커리 파우더를 생산하게 되었고 식당과 가정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일본식 라이스카레가 조선에도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커리 파우더를 생산하자 이를 수입해 들여온 것입니다.
1935년 5월 3일자 동아일보 4면에 실린 ‘라이스카레에 대한 인식 부족’이란 기사에서는 서양 음식의 하나인 라이스카레가 “지금은 우리 조선에서도 시골 궁촌(窮村)이 아니면 어지간히 보급되어 있습니다”라고 시작합니다. 기사를 살펴보면 카레의 기원은 인도이며 조선에서는 겨울에 춥다고 매운 라이스카레를 즐겨먹는다고 비교적 자세히 설명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기사에서는 카레를 ‘우리나라 고추와 달리 맵지만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구라파(유럽)에서는 생리 중에 먹지 않는다’고까지 카레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때부터 인기를 끌었던 카레는 1980년대 ‘레토르트 식품’이라는 새로운 산업분야까지 개척합니다. 1981년 오뚜기식품(현 오뚜기)이 1981년 처음으로 3분 카레를 선보인 게 시작이었습니다. 카레는 간편함을 내세워 주방을 공략했습니다. 오뚜기 광고에서는 당시 요리를 거의 하지 않던 남편도 카레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커리의 변주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카레라이스는 식상해지고 대신 인도식 커리, 동남아식 커리, 드라이 커리 등 새로운 외식 메뉴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번 퇴근 후 부엌에서는 카레 가루를 활용할 수 있는 레시피 2개를 선보입니다. 추억의 카레라이스와 게맛살로 만든 푸팟퐁 커리입니다.
▶재료: 카레 가루 (약 3/4팩) 물 600ml, 돼지고기 앞다리살 200g, 양파 1개, 당근 1/3 조각, 감자 2개 (3인분 기준)
1.양파, 당근, 감자는 깍둑썰기 합니다.
2. 냄비에 식용유를 두르고 중불에서 고기를 볶습니다. 고기가 반쯤 익으면 당근, 감자와 마지막으로 양파를 넣고 볶습니다.
3. 물 600ml를 냄비에 붓고 끓입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약하게 줄이고 뚜껑을 덮어 약 15분간 끓입니다.
4. 가루를 물에 갠 뒤 냄비에 붓습니다. 약불에서 국물이 걸쭉해질 때까지 10분간 저어가며 끓입니다.
남은 카레 가루로는 게살을 더해 푸팟퐁 커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카레라이스가 질릴 때쯤 색다른 맛으로 커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푸팟퐁 커리는 태국의 커리 요리로 튀긴 게를 코코넛 밀크와 달걀이 들어간 커리 소스에 볶아서 만든 요리입니다. 허물을 막 벗은 꽃게 등 껍데기가 무른 연갑게가 사용되어 게껍질 째 먹는 게 특징입니다.
집에서는 연갑게 대신 게맛살, 코코넛밀크 대신 우유 또는 치즈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선 양파를 채썰어 기름 또는 버터를 두른 팬에 볶습니다. 우유 200㎖를 넣고 약불에서 끓이다가 카레 가루 1인분 (1/4팩)을 넣습니다. 청경채나 샐러리를 넣어도 궁합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계란 2개를 풀고 게맛살을 올려내면 완성입니다.
[참고문헌]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윤덕노, 2016)
글로벌푸드 한국사 (주영하,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