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가을 주택시장에 이상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미분양이 넘치는 지역에 시세가 오르고, 100% 청약 성적을 거둔 분양 아파트 주변은 주택경기가 바닥이다. 또 전셋값은 뛰는데 매매가격은 오히려 곤두박질치는 역주행도 한창이다. 주택경기가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주택시장에 더 이상 과거의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근 주택시장의 전통 흐름을 뒤집는 아리송한 3대 기현상을 들여다 봤다.
▶미분양이 넘치는 데 집값은 왜 뛸까?=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달 17일까지 수도권에서 미분양이 많은 고양 김포, 용인, 파주 지역 아파트값이 일제히 올랐다. 8월까지 하락한 용인도 이달엔 0.02% 상승세로 돌아섰고 김포도 처음으로 0.05% 상승곡선을 탔다. 연초부터 곤두박질치던 고양(0.05%)과 파주(0.03%)도 상승 대열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용인(준공후 기준 3545가구), 고양(2266가구), 파주(1057가구), 김포(771가구) 등 이들 지역엔 미분양 아파트가 무려 7639가구에 달한다. 경기도 전체 미분양(7월말 기준 1만1921가구)의 64%에 달하는 규모다.
빈집이 많은 데도 시세가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택 크기별 ‘미스매치’가 주된 원인이다. 수요는 중소형에만 몰리고 중대형은 여전히 하락세다. 용인은 미분양 3545가구 가운데 97%인 3426가구가 전용면적 85㎡이상 중대형이다. 고양도 전체(2266가구)의 91%인 2067가구가 중대형이다.
아파트 시세 상승을 주도하는 것은 중소형이다. 예컨대 용인의 경우 지난달 85㎡ 초과는 0.07% 하락했지만 60~85㎡ 크기는 0.04% 올랐다. 반대로 중대형은 하락세의 연속이다.
▶분양 대박쳐도 주변 아파트 시세는 꽁꽁?=최근 삼성물산 ‘래미안 서초 잠원’은 평균 청약경쟁률 25.6대1을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래미안 서초 잠원이 들어설 서초동 일대 아파트 주민들은 시세 상승을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이같은 기대는 실현되지 못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잠원동 아파트값은 이달 둘째주 기준 1㎡당 772만원으로 지난달과 비슷했다. 이에 앞서 위례신도시나 동탄2신도시 일대 아파트 분양도 큰 인기를 모았지만 주변 아파트 시세는 잠잠했다. 이는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낮게 분양하는 ‘착한 분양가’ 때문이다. 아파트 분양이 대박을 치면 주변의 아파트 시세도 덩달아 오르는 ‘시세 동조화 현상’이 사라진 것이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요즘 분양하는 아파트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 수준이거나 주변시세보다 오히려 싼 곳도 많다”며 “저렴한 분양가나 뛰어난 상품성으로 성공 분양한 경우가 많아 주변 시세가 덩달아 들썩이는 현상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세시장 과거 상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왜?=수도권에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 60% 이상이면 매매수요로 돌아서는 세입자가 늘어나 집값이 오른 게 상식이다. 하지만 요즘엔 이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경기도 전세가율은 지난달 말 기준 60.2%를 기록했지만 매매시장은 오히려 대부분 하락세다.
또 신규 입주 아파트엔 전세 물량이 많고 전셋값도 싸다는 상식도 잘 안통한다. 새아파트에 미리 전세 계약하는 세입자가 몰리면서 아파트 전세도 비싸졌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준공된 새 아파트 전세가율은 64.8%로 2008년(31.3%)보다 배이상 높았다.
신규 아파트의 입주시점 평균매매가격이 2008년 8억4254만원에서 올핸 6억5058만원으로 떨어졌지만 전세보증금은 4억2050만원으로 1억5796만원 올랐다.
이영진 이웰에셋 대표는 “주택시장에 투자 수요가 사라지고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 과거 집값 상승기에 적용되던 투자 상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며 “실수요자 입장과 중장기 관점에서 주택시장에 접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