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와 함께 화폐가치의 기준이 된 金 최고의 안전자산인 동시에 최후의 기축통화 총성없는 통화전쟁속 절대불변 가치 재조명
금은 절대가치를 지닌다. 인류 역사와 함께 화폐가치의 기준이 되어 온 금. 그래서 금은 늘 탐욕과 투기의 대상이었다. 콜럼버스의 항해도, 마르코 폴로의 동방여행도, 결국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상상의 공간 ‘엘도라도(El Doradoㆍ黃金鄕)’를 찾아 떠난 욕망의 탐험이었다.
‘금’을 향한 소유욕은 국가와 개인을 가리지 않는다. 금을 둘러싼 전쟁과 골드러시는 세계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천년 이상 시도한 ‘연금술(鍊金術)’은 금을 향한 인간의 욕심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무국적 통화’인 금은 오늘날 세계경제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금은 안전자산인 동시에 최후의 기축통화로 여겨진다. 환율 방어수단이자 지급능력의 척도로서 국부(國富)를 상징하기도 한다.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의 키프로스가 금을 팔아 부족한 구제금융자금을 마련키로 한 것이나, IMF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부족해진 달러를 대신하고자 금 모으기에 나선 것이 대표적 사례다.
‘커런시 워’의 저자인 제임스 리카즈는 “금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뛰어난 안정성을 지닌 화폐”라고 말한다. 특히 명목화폐의 손실을 막을 수 있는 ‘인플레이션 헤지’는 절대가치를 지닌 금의 가장 큰 기능 중 하나다.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인 존 폴슨은 “금이야말로 달러를 대신할 가장 적합한 화폐이며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장기투자처”라고 갈파했다.
금은 이제 단순 재화(財貨)를 넘어 글로벌 경제시장에서 주목받는 화폐로서 자리매김했다. 최근 10년간 금값은 꾸준히 상승해 왔다.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금값이 한때 바닥을 찍었지만 세계적인 양적완화 기조에 힘입어 이후 3배 가량 높아졌다. 다만 금의 ‘슈퍼 사이클(대호황)’에도 금이 갈 만한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15일 금값은 하루 하락률로는 30여년 만에 최대치(9.3%)를 보이며 온스당 1340달러까지 내려갔다. ‘슈퍼 사이클’의 종말론까지 나오며 금값은 1200달러까지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비관론이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금값은 보란 듯이 이내 반등세가 이어지며 열흘도 안 돼 1400달러를 회복했다. 최근 들어 저가매수와 현물수요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금 수요를 더욱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금을 찾는 새로운 골드러시(?)가 일어난 것이다.
요즘 중국과 홍콩에선 ‘금 쇼핑’에 나선 현지인들로 금 인기가 다시 치솟고, 금 최대소비국인 인도에서는 힌두교 결혼 시즌을 맞아 금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일본도 양적완화 정책으로 금 보유 심리가 강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금값 하락으로 독수리가 그려진 0.1온스 금화를 사려는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 재고가 바닥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미국 조폐국은 금화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 사랑’도 여전하다.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지난해에만 535t의 금을 사들였다. 이는 1964년 이래 최대치다. 최근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 신흥국 중앙은행들도 금을 잇달아 사들였다. 달러화와 유로화 자산에 집중해 온 나라들이 자산 다변화 차원에서 금을 계속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실질금리가 떨어지고, 위험자산가격 하락으로 안전자산으로서의 금이 재부각된다면, 금의 수요가 더욱 늘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최근 헤지펀드들이 금 매수에 다시 나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요즘 전 세계는 ‘통화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자국의 살길을 찾기 위해 보호주의적 통화정책을 펼치는 중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경제시장에 지뢰처럼 깔려 있는 여러 리스크로부터 각 나라를 보호해 줄 수단으로 금의 존재감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안한 세계경제 속에 과연 금이 든든한 보호막이 될 수 있을지, 지금 이 순간 세계는 금에 주목하고 있다.
권남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