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피더스, 헤드헌터 통해 영입나서
일본이 자국 반도체 부활을 선언하며 속도전을 펼치고 있지만, 일본도 첨단 인력 구인난은 심각하다. 이에 일본 기업들은 한국의 첨단 반도체 인력 영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가뜩이나 반도체 인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본과 중국 등 주변 경쟁국도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라피더스는 최근 헤드헌터(구인 대행업자)를 통해 국내 반도체 인재 영입에 나섰다. 자국 인재들의 부족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량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의 첨단 분야 인재들을 대상으로 조용히 구인에 나선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계 반도체 주요국들이 국경과 무관하게 첨단 반도체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최근 일본 회사들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파운드리 경쟁력을 갖춘 한국 인재들에게고연봉을 제시하며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라피더스는 ‘반도체 부활’이란 사명을 안고 2022년 8월 소니, 도요타자동차, 덴소, 키옥시아, NTT, NEC, 소프트뱅크, 미쓰비시 UFJ 은행 등이 합작해 만든 파운드리 회사다. 현재 2027년 2나노급 제품을 양산한다는 목표로 홋카이도에 신공장을 건설 중이다. 현지 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서 파운드리 인력을 모집하며 준비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극심한 첨단 반도체 인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30년 가까이 첨단 반도체 생산 시계가 멈췄던 탓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 반도체 산업은 전세계 톱이었지만, 경기침체, 미국의 규제 등으로 삼성전자에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를 내줬다. 현재 일본의 파운드리 생산 능력은 40나노급에 그친다. 이는 2000년대 후반 공정 수준이다. 전통 강자 분야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인재 시장은 탄탄하지만, 파운드리 및 AI 반도체 설계 등에 당장 투입될 첨단 인재를 구하기가 힘들다.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도 원인으로 꼽힌다. 오랜 기간 여러 강소 소부장 기업을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이 발달하게 됐고, 대형 반도체 기업이 사라진 탓에 임금 수준이 개선되기 어려웠다. 일본의 한 구직사이트에 따르면, 반도체 설계 인력의 평균 연봉은 400만~500만엔(한화 약 3600만~4500만원)이다. 지역별, 직무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한국보다 훨씬 적은 수준이다.
이에 지난해 말부터 주요 장비사를 중심으로 초봉을 인상하는 등 처우 개선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도쿄일렉트릭(TEL)은 올 4월 입사하는 모든 신입사원의 월급을 40% 인상한다고 밝혔다. 무려 7년 만의 초봉 인상이다.
올해 TSMC 구마모토 1공장이 생산을 시작하는 등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되면 일본 주요 기업들의 반도체 인력 쟁탈전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TSMC는 앞서 채용 공고에서 지역 반도체 업체들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인력 확보에 나섰다. 2022년 채용 당시 제시한 연봉은 대졸자 초임은 28만엔(한화 약 267만원), 석사 수료시 32만엔(약 305만원), 박사 수료시 36만엔(약 343만원) 등이다. 올해 입사자들은 이와 비슷하거나 소폭 더 높은 연봉을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TSMC는 일본 반도체 인력의 빈자리를 우선 대만 현지 인력을 채웠다. 구마모토 공장에는 직접 고용 기준 1700여 명이 근무하는데, 이 중 400명이 대만에서 온 주재원이다. 올 상반기에는 250여 명의 일본 직원이 신규 입사할 예정이다. 김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