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기후변화 피해를 본 개발도상국 등을 지원하는 새 기후재원 금액이 연간 1조3000억 달러(약 1827조원)로 합의됐다. 다만 선진국이 부담할 금액은 연간 3000억달러(한화 약 421조원)에 그치면서 개발도상국들의 빈축을 샀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24일 오전 3시께(현지 시간) 연간 1조 3000억달러 규모 기후재원 목표를 채택하고 폐막했다.
합의문은 2035년까지 공공 및 민간 모든 출처에서 개발도상국 당사국의 기후 행동을 위한 재원을 최소 연간 1조3000억달러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1조3000억 달러 목표에 대한 진척 상황을 평가하기 위한 로드맵을 설정, 2026년과 2027년에 보고서를 발표하고 2030년에 이 결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기후재원 중 선진국 당사국들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연간 3000억달러(약 421조원)다. 합의문 초안에서 연간 2500억달러(약 351조원)로 설정됐으나, 개도국의 반발에 부딪혀 ‘최소’라는 문구와 함께 금액이 상향 조정됐다.
아비나쉬 퍼소드 미주개발은행(IDB) 기후변화 특별고문은 “치열한 협상 끝에 개발도상국으로의 연 3000억 달러 지원 목표에 도달했다”며 “이는 현재 선진국들이 정치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준과, 개발도상국들에 의미 있는 변화를 줄 수 있는 수준 사이의 경계선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기후재원을 내야 하는 선진국은 미국, 캐나다, 유럽 연합(EU) 등지 20여 개국으로, 1992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정한 주요 선진국(부속서)이다. 한국을 포함한 이외의 국가들은 자발적으로 재원을 공여할 수 있지만 의무는 아니다.
미국과 EU 등은 중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탄소 다배출 국가들도 분담금에 기여하길 바랐으나 합의문은 개발도상국의 자발적인 기여를 ‘장려한다’는 수준으로 마무리됐다.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을 통한 개발도상국 간 자발적으로 기여도 권장됐다.
개발도상국들은 인플레이션과 기후변화가 심화하고 있으므로 새 기후재원 규모를 높게 잡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선진국이 부담해야 할 재원으로 연간 5000억 달러(약 703조원)까지 제시됐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찬드니 라이나(Chandni Raina) 인도 대표단 대표는 “이 문서는 시각적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우리 모두가 직면한 엄청난 과제를 다루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서의 채택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새 기후재원 목표 설정은 올해 총회의 핵심 쟁점이었다. 2025년 기존의 기후재원 조달 약속이 만료되면서 올해 총회에서 새로운 금액이 설정해야 했다.
그동안 선진국들은 2020년까지 연간 1000억달러(약 140조원)를 제공하기로 약속했으나, 목표보다 2년 늦은 2022년에 이를 달성했다. 이조차 선진국들만이 마련한 금액은 아니다. 공식과 비공식, 공공 및 민간 기후재원을 모두 포함됐다.
이번 총회에서 결정된 기후재원 역시 1조3000억달러 중 선진국은 3000억달러를 부담하는 데 그쳤다. 즉, 4분의 3 이상의 기후재원은 민간에서 조달될 전망이다. 공공 자금과 보조금 기반, 우호적인 금융 등이 언급됐지만 정작 구체적인 약속은 빠져있다는 지적이 인다.
기후재원에 민간 자금까지 포함될 경우 재원이 언제, 어떻게, 어떤 국가나 프로젝트로 투입됐는지 집계하기 어렵다. 또한 집계하는 과정에서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게 개발도상국 등의 우려다.
대신 하한선은 마련됐다. 적응을 보장(adaptation guarantee)하고 적응기금 및 기타 취약국 지원금을 3배로 확대하면서 이를 공공 자금으로 지원돼야 한다는 점이 명시됐다. 또 최빈국(LDC) 및 소규모 도서국(SIDS)에 대한 보조금 자금 확대를 목표로 2026~2027년에 최소 할당량을 검토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사이먼 스틸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폐막 본회의에서 “힘든 여정이었지만 우리는 합의를 이뤄냈다”며 “이번 새로운 금융 목표는 전 세계적으로 악화하는 기후 영향 속에서 인류를 위한 보험 정책”이라고 밝혔다.
다만 “자축할 때가 아니다”며 합의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모든 보험 정책과 마찬가지로, 이 정책도 보험료가 제때 완전히 지급될 때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며 “어느 나라도 원하는 모든 것을 얻지는 못했으며, 우리는 바쿠를 떠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산적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