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역사학과 박사과정생인 이남희 씨는 8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민낯이 드러난 10월 24일 보도를 봤을 때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돼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근간을 둔 나라라는 근본적인 믿음을 부정하는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취재X파일] 바다 건너 미국ㆍ일본ㆍ프랑스에서도…“박근혜 탄핵하라”
[사진=게티이미지]

세계 곳곳의 유학생들과 교포들도 분노한 사건이었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10여 개국 30여 개 도시에서 유학생들과 교포들이 촛불집회를 벌이는가 하면, 하버드 대학교와 UC버클리, 스탠퍼드,싱가포르, 홍콩, 베이징, 대학교 유학생들이 잇달아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아이오와 대학교 한인 학부생ㆍ대학원생들 100여 명은 박근혜 탄핵안 가결 성명을 7일(현지시간) 발표하기도 했다. 아이오와 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 중인 이보미 씨는 최순실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어떻게 민주주의 정부가 이렇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라며 “여러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시국선언을 하는 걸 인터넷에서 보면서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지난 담화 후에 탄핵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이 갈리고 비박이 흔들리면서 우리는 국회에 의사를 전달하자는 차원에서 의견을 모았다”라고 말했다.

아이오와 대학교 한인 유학생 및 아이오와 주 아이오와시티 주민들은 “대통령은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자신의 책무를 망각했다”라며 “국회의 제도적 절차에 의거한 탄핵 발의, 탄핵 의결, 그리고 이로부터 시작되는 대통령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동시에 대통령의 명예롭지 않은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의사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재X파일] 바다 건너 미국ㆍ일본ㆍ프랑스에서도…“박근혜 탄핵하라”
[사진=아이오와 대학교 한인 학생 제공]

일본 릿쿄 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중인 배아란 씨도 탄핵안 가결을 지지한다며 “박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라며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시키지 않으면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고 거대한 분노와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배 씨는 “일본 언론 중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ㆍ닛케이)처럼 심층적으로 이슈를 다루는 매체도 있었지만 비아그라나 샤머니즘 등 각종 가십거리를 보도하는 주요 매체들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좌절감이 들었다”라고도 말했다.

유학생들은 이번 탄핵안이 ‘민주주의 정상화’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남희 씨는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민간인 최순실에 의해 자행된 국정농단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행하는지도 모르고, 구시대적 생각을 타파하지 못한채, 이식된 체제를 받아들인 세대가 저지른 혹은 유지해온 관행의 결정체”라며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가 진정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배아란 씨는 “탄핵안이 부결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대중이 적극적으로 정의실현과 정부 투명성 회복을 위해 꾸준히 주문해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취재X파일] 바다 건너 미국ㆍ일본ㆍ프랑스에서도…“박근혜 탄핵하라”
[사진=헤럴드경제DB]

익명을 요구한 프랑스 유학생 박모 씨는 “법치주의를 검사나 국회가 아닌 국민의 분노로 되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낀다”라며 “지금이라도 국회가 정치적 실리가 아닌 민주주의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해주기를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이 씨는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정치체제는 ‘국민’이 통치집단의 통치 대상으로, 때로는 수단으로, 그리고 볼모로 여겨지는 것을 꽤 오랫동안 용인해왔다고 생각한다”라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보다는 정치가 개인이 위임한 권리가 어떻게 행사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과정이라는 인식을 먼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국민의 힘을 위임받은 통치집단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이 우리나라에 어떤 민주주의 시스템이 뿌리내릴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하고 정착시키는 데에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 일본인 네티즌은 본 기자의 페이스북 메신저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왜 국민의 소리를 무시하고 샤머니스트 가족인 최순실이라는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본 기자는 “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사과하고 개각을 추진함으로써 여론의 분노를 달래려고 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여론조사에서 67%의 국민이 박 대통령의 사임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설명했다. 샤머니즘에 대한 내용은 본 기자 역시 당사자가 아닐 뿐더러 자세한 내막을 안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