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근무 많은 종사자들 고통 휴식 늘리기 등 대비책 역부족 “정부 감시·감독 강화” 의견도
“아이스팩이요? 한 시간도 못 가는데, 그걸 언제 갈아 끼우겠어요? 너무 더워서 어떻게 되겠다 싶을 때는 차에 들어가서 10분이라도 에어컨 바람을 쐬는 수밖에 없죠.”
한 보안업체에서 현금 수송 업무를 하는 양모(31) 씨는 여름철만 되면 건강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더위를 탄다. 더위를 못 견디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두꺼운 방검복에 이것저것 지녀야 할 물건도 많아 밖에서 장시간 근무할 때는 땀을 비 오듯 흘린다.
회사에서도 조끼 안에 넣으라고 아이스팩을 주지만, 장시간 근무하다 보면 역부족일 때가 많다. 하루는 일회용 아이스팩을 사보기도 했지만, 사치라는 생각에 이마저도 포기했다. 양 씨는 “이러다 쓰러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 정도로 올여름은 유독 덥다”며 “휴대용 선풍기부터 팔 토시까지 온갖 장비로 겨우 버텨내고 있다”고 말했다.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가 지났지만, 폭염은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찜통더위’가 이어지면서 더위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일부 직종 종사자들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최근에는 자외선 지수와 함께 오존 주의보 발령 횟수도 급격히 늘어 외근이 잦은 직종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 집계를 시작한 지난 5월29일부터 이달 6일까지 보고된 온열질환자는 1284명에 달한다. 직업별로 살펴보면 농림어업 종사자가 160명으로 가장 많고, 기능직종과 기계조작 관련 업종이 각각 137명과 80명을 기록했다. 장소별로 살펴봐도 공사 현장 등 실외 작업장이 411건으로 가장 많았다.
‘젊음’도 폭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지난 2일 오후 4시,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한 공사현장에서 러시아 국적의 20대 A 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다른 근로자가 발견했다. 그의 체온은 40도가 넘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열사병 증세를 확인하고 대전의 종합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다발성 기능부전으로 숨졌다.
온열질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공사현장 등에서는 직원들에게 각종 폭염 대비 도구를 나눠주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특히 팔 토시가 가장 흔히 쓰인다. 물을 묻히기만 해도 팔이 시원해지면서 더위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공사일정 자체를 혹서기에는 비교적 느슨하게 잡고 있다”며 “공사할 때도 휴식 시간을 대폭 늘리고 물과 팔토시 등을 충분히 지급해 열사병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외활동이 많은 의경도 여름나기가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의경들은 외부 경비를 서는 경우가 많은데 복장 규정이 엄격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 일선 경찰 관계자는 “의경들이 더위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어 팔토시 같은 경우는 예산을 들여 지급하고 있다”며 “지난해에는 햇볕이 너무 따갑다는 고충이 많아 자체적으로 경비를 서는 의경들에게 선글라스를 지급해준 적이 있는데,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취소된 적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혹서기 건강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직종에 더 많은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대원 노무사는 “정부가 온열 질환 예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사업장에 이행을 촉구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반복된다”며 “강력한 단속과 함께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업체에 대한 근로감독 등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오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