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담집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15년 만에 세상을 향해 입을 연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신장섭 싱가포르대 경제학 교수가 집필한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대우그룹 해체 후 15년 세월의 변화야말로 IMF 당시 자신의 믿음과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신흥국시장 개척과 글로벌 경영 등의 경영 혜안을 당시 경제팀이 이해하지 못하고 대우를 해체시켜 국가경제에 30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게 했다는 논리다.

오는 26일 발간되는 대담집 내용의 상당부분은 당시 대우그룹 해체가 ‘김우중 제거’를 염두에 둔 정부 주도의 인위적 해체였음을 주장하는 데 할애됐다.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이끌던 정부 경제팀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는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 동안 김 전 회장 주변에서 당시 ‘대우가 정부에 밉보였다’는 증언들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이번에는 김 전 회장이 직접 나섰다는 게 차이점이다.

김 전 회장은 ‘돌을 팔아도 수출할 수 있던’ 원화약세 상황에서 대우는 무역흑자로 위기를 극복하려 했지만,IMF 당시 경제팀은 이를 밀어내기 수출, 돌려막기 수출로 폄하시키며 수출금융을 막았다고 증언했다.

대우는 해체됐지만, 조기에 국제통화금융(IMF) 관리체제를 벗어나면서 김대중 정부 경제팀의 정책은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시 고강도 구조조정이 멀쩡한 기업들까지 무너뜨렸다는 반론도 있지만, 정설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김 전 회장은 당시 경제팀의 무리한 구조조정 처방으로 우리 기업과 우리 경제가 엄청난 기회를 잃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년 가까이 세계경제가 호황이었다. 관리들이 길게 보지 못했다. 20년 이상은 예상하고, 10년은 내다보면서 정책을 세워야 하는데. 우리가 세계경영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면 2000년대에 크게 열매를 거둘 수도 있었다. 결국 그 열매들은 (대우 등을) 인수한 외국투자자들이나 출자전환 해서 들어온 금융기관이 다 갖고 갔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로 쓰러져가던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회생 발판은 중국에서 뷰익 엑셀(Buick Excelle)이 큰 성공을 거둔 덕분이다. 이 모델은 대우차의 누비라가 기반이 됐다. 김 회장은 1999년 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GM이 50억~60억 달러에 대우차 인수를 제안했다고 기억했다. 결국 GM은 2002년 13억 달러에 대우차를 인수한다.

그리고 김 전 회장은 비단 대우 뿐 아니라 다른 금융기관과 기업들도 구조조정이란 명분 아래 헐값 매각해 국가경제에 큰 손실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보니까 너무 싸게 팔았다는 것들이 많지 않는가? 그래서 지금까지 국부(國富) 해외유출 문제가 나오는 거다. 우리가 그렇게 싸게 판 것이 산 사람들 입장에서는 큰 이익이다. 그 사람들은 ‘한국이 문제 많다, 구조조정 해야 한다’라고 자꾸 얘기해서 좋은 매물이 싸게 나오면 자기들에게 좋은 거다”

하지만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은 “당시 대우는 시장의 신뢰를 잃어 붕괴했으며, 김 전 회장은 정부정책에 불만만 터뜨렸을 뿐 자산매각이나 외자유치 등과 같은 자구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강봉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도 “역대 정권에서 대우가 어려울 때 청와대에서 도와줘서 해결된일이 많다”면서 “금융시장에서 대우가 문제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자금을 회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대담집 발간으로 김 전 회장 측의 논리에 좀 더 힘이 실릴 가능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대우가 존속했다면’이라는 가정이 바탕이 된 만큼,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는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