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日의존률 높은 웨이퍼ㆍ제조장비 ‘핀셋규제’ 촉각

- 삼성·하이닉스 공급라인 한축 무너지면 전세계 연쇄 타격

- 디플도 일본산 원자재 30%…전량 日수입 품목도 상당수

- 소재업체 ‘원료교체 승인’ 행정공백땐 공장 멈출수도

- TF구성 잠재품목 집중점검…재고확보ㆍ대체재 테스트 등 안간힘

[화이트리스트 제외]“日, 반도체·디플·화학 등 간판산업 급소 찌를 것”… 재계, 공급처 다변화 총력전
일본이 1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키로 전격 결정하면서 반도체 실리콘웨이퍼 등 국내 간판산업의 핵심 원자재를 ‘핀셋규제’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헤럴드경제=천예선·이세진 기자] 이변은 없었다. 일본 정부가 결국 2일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가)에서 한국 배제를 강행하자 국내 산업계는 일본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화학 등 간판산업의 ‘급소’를 집중 겨냥할 것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본의 추가제재 사정권에 든 기업들은 지난달부터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수출규제 가능성이 있는 품목을 집중 점검하는 한편 재고 확보와 공급처 다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기존 3개 품목 수출규제만으로도 파급력이 이 정도인데 화이트국 제외로 수출규제 품목이 1100여개로 늘어나면 국내 산업은 전방위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화이트리스트 제재 품목 중에는 차세대 반도체 소재나 제조 장비, 자동차 관련 부품 등 국내 업계에 뼈아픈 품목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생산 차질이 빚어지고 산업 공급망 자체가 붕괴되면 경제적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지난달 일본 경제보복의 1차 표적이 된 반도체 업계는 기존 수출규제 3개 품목 외에 다른 소재나 제조장비를 일본 정부가 ‘핀셋규제’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 일본 정부가 “군사전용도 가능한 반도체 원재료에 대한 한국 측의 취급에 부적절한 사례가 발견됐다”며 반도체를 콕 찍어 밝히기도 해 업계는 초긴장 상태다.

[화이트리스트 제외]“日, 반도체·디플·화학 등 간판산업 급소 찌를 것”… 재계, 공급처 다변화 총력전

만에 하나 반도체 제조공정의 핵심 원자재인 실리콘웨이퍼(반도체 기판)와 회로패턴 전사(轉寫)용 원판인 포토마스크, 그 포토마스크의 원자재인 블랭크 마스크 등 핵심 소재와 제조 장비가 포함될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는 말 그대로 치명상을 입게 된다.

우리 기업의 실리콘웨이퍼에 대한 일본 의존률은 52.8%이며 포토마스크와 블랭크마스크는 각각74.6%, 65.5%에 달한다. 또 반도체 제조장비 의존률은 무려 80~90%에 이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수백개 공정 중 단 한 공정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제품 생산 자체가 되지 않는다”며 “품목별 일본 의존률의 경중과 상관없이 일본에서 전량을 수입해 대체 공급처가 아예 없는 품목이 포함되면 생산차질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달 4일 일본이 수출규제를 발동한 직후 협력사에 일본산 부품의 90일치 재고 확보를 요청하는 등 컨틴전시 플랜(비상경영 계획)을 가동하고 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행령 개정 후 추가 수출규제가 본격 발동되는 이달 말까지 최대한 원자재 수입을 늘려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7~12일 일본 출장을 다녀온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판단하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TV등 전(全)제품에 대래 상황별 대책을 지시하기도 했다.

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본산 이외의 제품 테스트에도 착수했다. 이들 업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체재 세부조성을 달리하거나 공급처를 다변화해 품질 검증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메모리반도체 세계 공급의 70%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업체들의 공급라인 한축이 무너지면 전 세계 공급사슬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는다는 사실을 일본도 알고 있기 때문에 최악 상황까지는 치닫지 않지 않겠느냐”며 일말의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역시 일본에서 수입하는 원자재가 전체의 30%를 차지해 좌불안석이다.

디스플레이 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재 어떤 품목이 구체적으로 규제 리스트에 포함될 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잠재적으로 포함 가능성이 있는 원자재를 점검하고 협력사 재고 상황을 파악해 물량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화이트리스트 제외]“日, 반도체·디플·화학 등 간판산업 급소 찌를 것”… 재계, 공급처 다변화 총력전
SK이노베이션 울산 콤플렉스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화학업계는 지난달 사태 발생 이후 중간 원료와 소재를 국산이나 중국산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대(對)일본 수출액 의존도가 98.8%에 달하는 기타석유화학 중간원료의 경우, 수입금액은 1억6200만달러(1930억원) 가량으로 다른 물품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지만 대체가 어려운 품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중간 소재를 생산해 국내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에 공급하는 B2B(기업간거래) 업체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원료 대체선을 찾는 것도 문제지만 공급업체에 바뀐 원료로 생산하겠다는 PCN(Process Change Notification)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걸릴 수 있다.

화학업계 종사자는 “업체들 사이에서는 PCN 때문에라도 원료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화이트리스트 지정으로 대체원료를 찾는다고 해도 행정상 공백이 생기면 실제로 공장이 멈출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공급사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어 현재로서는 대책을 세울 수도 없는 상황이고, 생산 차질을 최소화한답시고 PCN 승인 과정을 간소화하거나 빨리 진행하는 것도 제품 안정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속수무책”이라고 덧붙였다.

배터리의 4대 핵심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을 아사히카세이와 도레이 등 일본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대체선 확보에 나서고 있다.

분리막은 배터리에서 전기를 만드는 양극재와 음극재를 분리해 이온만 통과시키는 소재로, 분리막이 접히거나 찢어지면 폭발이나 화재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분리막을 자체 개발해 조달 중이고, LG화학과 삼성SDI는 7월부터 일본산 분리막 물량을 줄이고 국산·중국산 등 물량을 늘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지난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이 확대될 경우를 가정해 시나리오 플래닝에 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현장은 매우 심각하다. 국산화나 추가경정예산을 확대하면 될 것처럼 생각하선 곤란하다”며 “국산화로 대응한다면 어떤 진입장벽이 있는지 빨리 찾아 해결하는 쪽으로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