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 준비하는 판매자, 방주‘ 만드는 소비자
몰리는 주문에 액상 품절…악성 재고도 다 팔려
[헤럴드경제=박재석 기자] #1 “당연히 사재기 일어났죠”
액상형 전자담배의 니코틴 액상 가격 인상이 예고된 이후 사재기가 있었는지 묻자, 매장을 운영하는 40대 A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보통 2개월에서 3개월 정도의 니코틴 액상을 구비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의 2배 정도를 준비했다. 그는 최근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현재 갖고 있는 재고에 대해서는 기존과 동일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2 10년 이상 액상형 전자담배 매장을 운영해온 30대 B씨. 그는 지난 7일께 도매 업체에서 니코틴 액상을 주문하려다가 품절 소식을 들었다. 세금 인상 소식에 사람들이 주문 물량을 늘린 탓이다. 그는 “일부 사람들이 제품을 많이 구입하면서 물량이 없어지고, 위기감을 느낀 다른 사람들도 주문량을 늘렸다”고 말했다. B씨는 이어 “평소 10개 구입할 것을 20개씩 구입했다”고 덧붙였다.
‘미리 구입해두자’…악성 재고도 다 팔려
19일 담배업계에 따르면, 연초의 잎 외에 줄기나 뿌리 등으로 만든 니코틴 액상에도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개별소비세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지방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도 국회를 통과한다면, 연초의 줄기나 뿌리 등으로 만든 니코틴 액상에는 1㎖당 1799원(개별소비세 370원, 담배소비세 628원, 지방교육세 276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525원)의 세금이 붙는다. 이에 따라 현재 3만~3만5000원에 팔리는 30㎖ 니코틴 액상 가격이 9만원을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개정안이 속속 통과되면서 액상형 전자담배 매장을 운영하는 소매업자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30㎖ 액상 가격이 9만원을 넘어가면서 손님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매장 운영이 생업인 그들에게 가격 인상 소식은 치명적이다. 이런 이유로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업자들은 서둘러 액상을 구비해두고 있다. 내년도 생산분과 수입분부터 세금이 붙는 만큼, 재고를 충분히 준비해 당분간 기존 가격으로 영업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준비한 재고가 떨어지면 오른 가격으로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미봉책에 그칠 뿐이지만, 조금이라도 생업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소매업자들이 주문량을 늘리면서, 니코틴 액상 생산 업체에서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도 발생했다. 액상 도매업체에서 일하는 30대 C씨는 “전자담배 소매업자들이 각자 구입 가능한 최대치를 사갔다”고 말했다. 인기 있는 상품은 물론이고, 악성 재고로 남아있던 상품마저 모두 팔릴 정도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저희도 많이 주문했고, 생산량을 넘어서면서 물량이 품절됐다”며 “이런 현상이 12월 들어 일주일 정도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방주’ 만드는 흡연자…합성니코틴으로 돌아설라
니코틴 액상을 평소보다 많이 구입하는 것은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자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방주’를 준비한다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노아의 방주에서 따온 말로, 가격이 오르기 전 니코틴 액상을 미리 대량 구입하는 행위를 뜻한다.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의 이러한 분위기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금 부과 대상이 아닌 합성니코틴으로 만든 액상으로 수요가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씨는 “현재 준비한 재고를 다 판매하면 문을 닫거나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은 합성니코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