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끌어안고 ‘마지막 버티기’ 돌입
자영업자 쓰러지자 주요 상권도 무너져
“‘아랫돌 빼기’식 K-방역, 이제 멈춰달라”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한 1500만 원정도네요, 현재까지 이번 달 적자. 저 혼자 감당해야 하는 돈이죠.”
지난 22일 오후 1시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있는 한 오피스 상가 안.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윤정(45) 씨는 12월 매출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적지 않아 보이는 돈 957만 원. 하지만 이 돈으로는 가게 한 달 고정 비용 1630만원도 낼 수 없다. 이번 달 가게 예상 적자는 1473만원(표 참조)이다.
2월부터 매출이 감소한 그의 가게는 올해 누적 적자만 총 1억원이 넘는다. 이마저도 직원을 줄이는 등 갖은 조처를 해서 줄인 금액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영업자가 얼마나 힘든지 막연하게만 아는 듯 하다”고 말했다. 그는 매달 매출을 기자에게 불러주며 “턱밑까지 차오른 위협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0년 마지막 주를 앞두고 자영업자들도 ‘마지막 버티기’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2월부터 빚이 늘어나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미 생계를 포기한 자영업자도 수두룩하다. 경제적 취약계층임에도 K-방역을 위해 최전방에 섰던 이들은 연말 특별방역 정책 앞에서 또 다시 삶의 기로에 섰다.
적자 끌어안고 ‘마지막 버티기’ 돌입
지난 21일~22일 헤럴드경제가 서울 주요 상권인 명동·여의도·이태원·홍대 일대 가게를 취재한 결과, 업종·상권을 가리지 않고 자영업자들은 생계 위협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마포구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김상화(60)씨는 이번 달 가게 월세 200만원을 내지 못했다. 김씨는 “9시까지 영업 시간이 제한된 이후로 사실상 영업을 못 하다 영업 금지까지 되니 돈이 없다”며 “내 월세로 생계를 이어가는 건물주도, 나도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네일아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영주(49·가명)씨도 17년 가게 역사상 최악의 매출을 경험하고 있다. 이씨는 “1년간 방역의 책임을 내가 떠안은 것 같아 화난다”며 “최근 10년 넘게 함께 동네에서 장사한 사장님도 매출 하락을 못 견디고 떠났다”고 말했다.
가게 사장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태원에서 대형 음식점을 운영하는 홍연희(48·가명)씨는 “직원들이 ‘손님이 없으니 자발적으로 무급 휴가를 보내겠다’고 말할 때 마음이 아팠다”며 “직원들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계속하고 싶은데, 어제부터 연말 예약 취소 연락이 계속 와서 속이 탄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쓰러지자 주요 상권도 무너져
자영업자들의 충격은 주요 상권의 쇠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발표된 KB상권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서울 6대 주요 상권의 음식점은 일제히 매출이 줄었다. 매출이 가장 많이 줄어든 지역은 이태원으로, 6개월동안 35.6%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서울 대표 상권 중 하나인 강남이 마이너스 20.1%, 홍대가 16.9%로 뒤를 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빚지는 자영업자들도 대폭 늘었다. 상반기에만 자영업자들이 빌린 돈이 70조원을 넘는다. 대출액 증가율은 상반기에 이미 지난해 증가율을 넘어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보다 70조2천억원(10.25%) 증가했다.
“‘아랫돌 빼기’식 K-방역, 이제 멈춰달라”
자영업자들은 어떤 계층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방역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질적 보상’이 없는데도 지난 1년동안 반복되는 영업 제한을 견뎌왔으나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홍대입구역 근처 카페에서 일하는 유세화(29·가명)씨는 “그동안 정부의 방역 정책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었다”며 “가장 약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K-방역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혁신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가게 매출을 공개한 김씨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자영업자만 희생하라 하지 말고 고위 공무원·국회의원도 월급을 반납해 함께 고통 분담을 해달라”고 말했다. 현실적인 임대료 감면 정책도 주문했다. 이씨는 “임대료 감면이 또 다른 누군가를 희생하는 정책이 되어선 안 된다”며 “섬세한 정책만이 자영업자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