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에 중요한 파트너…한미동맹은 이제 글로벌 동맹”
“尹정부, 유럽처럼 中 비판해도 디커플링은 어려울 것”
“尹 대북정책, 억제 방점두면서 대화도 열어놓을 것”
“韓, 역동적인 민주주의…저항·비판의 ‘광장의 힘’”
한반도 전문가 라몬 파르도 한국 석좌 인터뷰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중국과 완전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중심 외교의 길은 열려있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CL) 국제관계학과장 겸 한국국제교류재단(KF)-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VUB) 한국석좌는 26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유럽 지역에서 KF가 최초로 임명한 한국석좌로, 우리나라 외교안보 분야 인사들과 넓은 인맥을 보유한 유럽 내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다.
최근 우리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가까워지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나토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한창인 가운데 롭 바우어 나토 군사위원장이 방한, 서욱 국방부 장관과 원인철 합참의장과 만났다. 나토 군사위원장의 방한은 2016년 5월 이후 6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 사례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참석할 나토 정상회의가 있다. AP 4(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도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나토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한 파트너다.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군사력과 사이버 대항 능력을 갖춘 국가이기 때문이다.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나토는 원래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한 조직이었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위협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사이버 위협, 해양 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기에 러시아와 중국이 밀월 속에서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토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에 아태지역에 있는 미국의 동맹국, 즉 한국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한미 동맹은 이제는 글로벌 동맹”이라고 말했다.
신냉전체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토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한국의 안보 지형에 더 유리할 수 있을까. 파체코 교수는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가장 큰 파트너이고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데 이는 많은 유럽 국가들의 상황과 비슷하다”며 “한국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중국 정책이 유럽의 대중정책과 비슷한 모습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남중국해 인공섬 문제와 같은 안보 문제와 신장, 홍콩 등 인권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서 중국을 비판하더라도 경제관계는 경제관계대로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실제로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미 이와 같은 현상은 유럽에서 나타났다”며 “(완전히) 예전처럼 신냉전체제로 갈라지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한국은 이미 중국에 당당한 외교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며, 가치 중심적인 사안에 대해 좀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으로 중국도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조선업 등 산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중은 상호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그는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도 실질적으로는 많은 것을 해왔지만 중국 때문에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이제는 한국이 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을 해도 된다”고 밝혔다. 이어 “쿼드(Quad·미국 인도 일본 호주 안보회의체)와 협력한다고 말을 해도 되고, 나토와의 사이버 안보 협력 강화, 안보대화 개최 등을 통한 파트너십 강화를 한다면 한다고 당당하게 말을 하고 성명을 내도 된다”고 조언했다.
윤 당선인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견제 협의체인 쿼드 참여 확대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한국 국익의 관점에서는 나토보다 쿼드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나토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속한 지역에 최적화돼있는 다자협력체제는 쿼드이기 때문”이라며 “쿼드에 속한 국가들은 한국의 중요한 경제, 군사 파트너이고, 이들과의 협력에 한국의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 수호의 문제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선제타격론 등 윤 당선인이 강경한 대북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선거 때와 집권 현실은 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선거 때에는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대북정책을 비판했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도 억제와 대화 두 가지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억제에 우선 방점을 두고 그다음에 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보수진영의 윤 당선인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호흡에 대해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비록 끝내 결렬됐지만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과 남북미 정상 회동이 성사될 만큼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의외의 ‘케미’를 보였다. 자기 생각을 가감없이 이야기하는 면에서 윤 당선인을 ‘남한의 트럼프’로 평가하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두 사람이 의외의 호흡을 보일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윤 당선인은 기본적으로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어서 2017년과 같이 단기적으로 긴장관계가 될 수 있다”며 “윤 당선인이 북한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최근 경제 강국을 넘어 기술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 ‘고래’로 성장한 한국을 집중 조명하는 저서 ‘새우에서 고래로: 한국, 잊혀진 전쟁에서 케이팝까지’(Shrimp to Whale: South Korea from the Forgotten War to BTS)를 집필했다. 식민지배, 남북전쟁을 겪으며 생존을 위협받던 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해외에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한국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파헤쳤다.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한국 사회가 점점 더 ‘리버럴’(liberal·진보)해지면서 보수와 진보의 정책적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제20대 대선에서도 정책적인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기에 후보 간 네거티브 전에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는 ‘광장의 힘’이라고 평가하면서 “한국은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비교적 짧은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한국이 민주화 이후의 세대와 경제 발전을 이룩한 권위주의의 향수에 젖은 세대가 나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경향은 스페인을 비롯해 해외 사례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