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 과정에서 비명계가 조직적으로 가결표를 던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간 지도부의 단일대오 방침에 침묵하던 비명계가 ‘익명의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는 가결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을 ‘수박 색출’하겠다는 감정 섞인 말까지 나온다. 수박이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의 은어다. 당이 쪼개질 수 있다는 위기감은 퍼지고 있지만 지도부는 여전히 ‘단합’을 외칠 뿐이다. 결국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할 이 대표가 승부수를 던져야 할 판이다.
30명 이상의 '비명계' 가결표 추정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전날 본회의에서 297명이 표결에 참여한 가운데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부결됐다. 민주당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이 표결에 참석한 점을 고려하면 최소 31명이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민주당의 이탈표가 없었다면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는 표의 최대치는 이미 체포동의안 가결 입장을 밝힌 국민의힘(114명), 정의당(6명) 의원 전원에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을 비판해 온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의 표를 더해 121표로 예상됐다.
실제로는 139표가 나온 만큼 민주당 내에서 나온 '찬성' 18표에 '반대'가 아닌 기권(9표), 무효(11표)를 적은 의원 수를 더하면 이탈표 규모는 최대 38표로 늘어난다. 민주당 내부에서 조직적인 이탈표가 발생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 민주당 친이계 의원은 “당 내부에서 기획된 투표로 볼 수 있다”며 “비명계 의원들의 표가 모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초 예상보다 부결표가 적었다. 애초 부결표는 민주당과 민주당 출신 무소속인 민형배·박완주·양정숙·윤미향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을 더하면 170표를 넘을 수 있다는 추정까지 나왔다. 지난 12월 뇌물 수수 혐의를 받던 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반대 161표로 부결됐는데 이번 반대 138표는 그때보다도 적다.
간신히 부결된 결과는 이 대표와 지도부의 당 장악력이 예상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드러낸 셈이다. 이번 결과는 이 대표의 ‘정치적 패배’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그간 지도부의 단일대오 방침에 쉬쉬하던 비명계가 ‘무기명 비밀투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관측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당이 방탄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다. 이제는 ‘방탄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 이 대표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한 초선 의원은 “비명계 측에서 이 대표를 향해 사실상 무력시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칼을 빼들었던 것일 뿐이지 직접 찌른 것은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李 리더십, 퇴진론 임박
이 대표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다. 당내에서 공식적으로 ‘이 대표 퇴진론’이 제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비명계 의원들은 이번 표결 전에 ‘체포동의안 부결 뒤 사퇴론’을 제기했다. 검찰이 이 대표의 추가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내년 4월 총선까지 이어질 경우 선거 패배에 대한 공포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당내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재선의 비명계 의원은 “이미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대한) 표결 전부터 이 대표의 사퇴론을 띄우기 위한 빌드업이 진행돼온 것”이라며 “부결 이후에 공식적으로 퇴진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李 강성 지지층, 겉과 속 다른 '수박 색출'
비명계의 사실상의 반란에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은 더욱 결집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 분란이 ‘내전 사태’까지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른바 ‘개딸’들은 이탈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을 색출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의 명단이 이미지 파일로 돌고 있는 상황이다.
비명계를 향한 문자 폭탄도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을 촉구해온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당을 출당 및 징계하라는 청원은 열흘 만에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당내 갈등의 봉합은 이 대표의 몫이다. 그렇다고 이 대표가 자진 사퇴할 가능성은 낮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기자회견 당시 사실상 사퇴론을 일축했다.
이 대표를 향한 추가 구속영장 청구가 예견된 상황에서 이 대표가 결단을 내릴 가능성은 높다. 대선 공약이기도 한 불체포특권을 내려놓는 방안이다. 비명계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방탄’을 스스로 해결하는 동시에 두 번째 체포동의안 표결에서는 부결을 장담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차선책일 수 있다.
한 비명계 의원은 "이 대표가 방탄 뒤에 숨지 않고 용감하고 당당하게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나가줬으면 하는 것들이 의원들한테 있었다“며 ”그런 것들이 27일 표결로 표현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친명계 의원도 “이 대표가 (당 단합을 위해)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며 “다음 번엔 쌍방울 사건으로 영장이 들어올 것으로 보이는데 영장심사에 직접 출석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총선 앞두고 당 지지율이 관건
지도부 차원에서는 비명계와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간 일방통행식으로 당의 방침을 정하면서 당내 갈등이 누적됐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표결의결과가 민주당이 의총 총의에 부합한다고 보긴 어렵다”며 “이번일을 계기로 당의 단일한 대오를 위해 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민주당 내홍은 당의 지지율 추이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당의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으면 이 대표의 거취 논란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 결국 지지율 추이가 이 대표 체제의 안정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내년 총선에 모든 당내 전략이 맞춰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각각의 의원들도 총선에 맞춰 개인의 입장과 행보를 정하는 시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