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최근 일본에서 강간죄의 명칭을 '비동의성교죄'로 바꾸고 성범죄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통과된 가운데, 일본에서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앱의 이름은 '키로쿠'로,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로드한 뒤 동의서의 내용을 확인하고 '동의'를 누르면 QR코드가 생성된다.
이 QR코드는 상대방과 서로 공유할 수 있으며 앱에 자동으로 저장돼 기록으로 남는다.
앱 개발사는 "성적 동의서를 작성하기 위해 종이에 이름을 적고 날인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다"며 "전문 변호사의 감수까지 마쳤기 때문에 법적 다툼에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이달 출시를 앞두고 '강제로 성행위에 동의했다는 기록을 남겨 범죄자가 처벌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등의 우려가 제기되자 개발사는 앱 출시일을 올해 안으로 연기했다.
개발사는 "악용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도록 보안 기능을 강화하고, 강제적인 동의가 기록됐을 때 구제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는 등 기능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성관계 동의 앱 출시와 관련, 일본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좋은 아이디어다", "서로 안심한 채 성관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찬성하는 의견도 있지만, "과거의 동의 이력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부끄럽다"거나 "의식불명이나 위협을 느끼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동의 강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우려도 나왔다.
한편, 일본은 지난 달 13일부터 '부동의 성교하면 처벌하는 법'을 시행 중이다.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했을 경우 일본 형법 제177조에 따라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성범죄에 미온적인 일본에서 이처럼 법률 개정이 이뤄진 것은 2019년 4건의 성폭행 무죄 판결이 계기가 됐다.
당시 나고야지방재판소는 “피해자가 현저하게 저항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며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법 개정 요구 시위가 이어졌다.
폭행이나 협박뿐 아니라 술이나 약물 섭취, 수면 등으로 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오랜 학대를 당했거나 사회·경제적 지위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경우 등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된 경우에 적용된다.
피해를 당한 후 바로 고소하기 어려운 성범죄의 특성을 고려해 공소시효도 기존보다 5년 더 연장하고 18세가 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성행위에 대한 동의를 판단할 수 있는 나이도 현행 ‘13세 이상’에서 ‘16세 이상’으로 높여 동의가 있더라도 16세 미만과 성행위를 하면 처벌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