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적의 노래 ‘하늘을 달리다’를 좋아한다. 빠르고 경쾌한 음률과 더불어 ‘마른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내린다고 해도/ 내 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 갈거야’라는 노랫말이 요즘처럼 화창한 봄날이면 입가에 자주 맴돈다. 매력적인 음색으로 노래하는 자우림의 ‘이카로스’도 마찬가지다.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보자/ 저 먼 곳까지 세상 끝까지/ 자, 힘차게 날개를 펴고 날아 보자/ 하늘 끝까지 태양 끝까지’. 젊음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 남쪽의 섬나라 크레타에 다이달로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아테네 시절부터 최고로 빼어난 예술가이자 기술자였다. 크레타 왕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미궁(迷宮, labyrinth)을 만들 것을 명한다. 황소 머리에 몸은 사람이고 식인의 습성을 가진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둬 놓기 위한 감옥이었다. 미궁은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다. 미궁 속의 길이 미로(迷路)가 된 유래다. 영웅 테세우스는 제물로 바쳐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미궁으로 들어가는데 그를 사모하는 아리아드네 공주가 준 실타래를 풀고 다시 그 실의 길을 좇아 비로소 미궁을 벗어난다.
미궁을 탈출한 사건이 일어나자 왕은 미궁을 설계하고 만든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에게 죄를 물으며 미궁에 가둔다. 미궁에 갇힌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는 빼어난 장인으로서 왕비의 도움을 받아 날개를 만든다. 백조의 깃털과 독수리의 깃촉, 황새의 날개깃을 모으고 벌집에서 채취한 밀랍으로 정교하게 붙였다. 이윽고 부자는 날개를 이용해 미궁을 탈출한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해방의 기쁨 때문이었는지 너무 높이 날아오르는 바람에 뜨거운 햇볕에 밀랍이 녹아내려 바다에 추락해 죽고 만다. 파도에 깃털이 젖을 만큼 너무 낮게 날아서도 안 되고, 햇볕에 밀랍이 녹을 만큼 너무 높게 날아서도 안 되며, 천천히 황새처럼 날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당부를 따르지 않은 결과였다.
소설가 이윤기 선생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화 역시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신화는 미궁과 같다’라고 일갈했다. 이카로스 신화는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도전을 묘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과 관습이 정하는 기존의 울타리를 벗어난 무모한 일탈로 그려졌다.
이카로스의 꿈은 목숨을 걸고 하늘을 나는 사람들의 꿈으로 치환됐고, 그들의 명예의 전당엔 늘 이카로스가 소환됐다. 1505년 다빈치의 오르니솝터, 1783년 몽골피에 형제의 유인 열기구 높이 950미터, 1849년 조지 케일리의 글라이더 유인 비행, 1891년 오토 릴리엔탈의 글라이더 활공 비행 350미터, 1903년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호 동력 비행 36미터.......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로를 걷고 때로는 미궁에 빠지기도 한다. 이때 이카로스 신화가 상징하는 꿈마저 없다면 무엇에 기댈 수 있을까. 야성미 넘치는 인간 ‘그리스인 조르바’가 살기도 했다는 크레타섬에 가 보고 싶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