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대한배드민턴협회 중간조사 결과 발표

안세영 폭로에 문체부 답했다…“협회장 횡령·배임 피할 수 없을 것”
지난딜 5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한국 안세영이 중국 허빙자오를 이기고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의 횡령·배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정우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은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이같은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국장은 “김 회장과 협회 사무처가 주도해 후원사로부터 1억4000만원 상당의 후원물품을 받기로 서면 계약을 체결했고 공문 등 공식 절차 없이 임의로 이를 배부했다”며 “실지급액을 비롯해 지역별 배분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후원 물품을 유용한 이른바 ‘페이백’ 정황을 확인한 문체부가 김 회장의 횡령과 배임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거론한 이유다.

지난달 5일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의 폭로로 문체부는 협회의 부상 관리나 스폰서십 계약 방식, 선수 연봉 체계에 대해 조사를 벌여왔다. 문체부는 국제대회 일정을 고려해 국가대표 선수단 48명 중 현재까지 22명의 의견을 청취했다.

안세영 폭로에 문체부 답했다…“협회장 횡령·배임 피할 수 없을 것”
대한배드민턴협회 조사 관련 중간발표 하는 이정우 체육국장. [연합]

중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협회는 유니폼뿐만 아니라 경기력과 직결되는 라켓, 신발까지 후원사의 용품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했다. 국내 올림픽·아시안 게임 44개 종목 중 배드민턴처럼 경기력에 직결되는 용품 사용을 선수들에게 예외 없이 강제하는 경우는 복싱이 유일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는 경기력에 직결되는 용품 사용을 강제하지 않는다. 덴마크는 신발 및 라켓에 대한 권리는 선수 소유임을 명시하고 있다.

협회가 지난 2021년 6월 연간 361만달러에 달하는 후원금의 20%(72만달러)를 국가대표 선수단에게 배분하는 규정을 일방적으로 삭제한 것도 드러났다. 이 국장은 “협회는 조항 삭제 전 당사자인 국가대표 선수단의 의견을 전혀 청취하지 않았다”며 “대다수 선수단이 문체부의 의견 청취 과정에서 이 사실을 인지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단은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달성했을 경우 받게 되는 보너스 지원 체계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가대표 선발 방식의 공정성 문제도 확인됐다. 배드민턴 단식은 선수의 경기력 100%로 선발하고 있는 반면, 복식은 경기력 70%과 평가위원의 평가점수가 30%다. 주관적 평가는 과거 50%였으나 2021년 공정성 논란으로 인해 10%로 축소됐다가 올해 2월부터 30%로 확대됐다. 이 국장은 “국내 올림픽·아시안 게임 44개 종목 중 복식 또는 2인 경기가 있는 12개 종목을 조사한 결과 11개 종목은 경기력만으로 선발됐다”며 “국가대표 선수단의 추가 의견을 청취하고 청소년·후보 선수, 지도자, 전문가 등 의견을 수렴해 대안 마련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안세영 폭로에 문체부 답했다…“협회장 횡령·배임 피할 수 없을 것”
대한배드민턴협회 조사 관련 중간발표 하는 이정우 체육국장. [연합]

앞서 안세영이 ‘대표팀에서 나간다고 해서 올림픽을 못 뛰는 것은 선수에게 야박하지 않나 싶다’고 밝힌 입장에 대해 문체부는 배드민턴 비(非)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을 제한하는 협회의 규정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국장은 “국내 올림픽·아시안 게임 44개 종목 중 배드민턴처럼 비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을 제한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국가대표 선수단 대다수는 국제대회 출전 제한의 폐지 또는 완화를 희망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국가대표 운영 지침에서 ‘선수는 지도자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는 취지의 항목을 폐지할 것도 권고했다.

협회는 용품 총 26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후원사와 수의계약으로 물품을 구입해 보조금법도 위반했다. ‘편파 판정’을 해결하고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2014년부터 시작된 상임심판제도를 별다른 대책 없이 올해 2월 폐지했다. 2021년부터는 협회의 감사가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회계법인에 세무조정료 명목으로 1600만원을 지급해 국고보조금 운영관리지침에 따라 임직원이 운영하는 업체와는 거래할 수 없는 규정도 어겼다.

안세영 폭로에 문체부 답했다…“협회장 횡령·배임 피할 수 없을 것”
대한배드민턴협회 조사 관련 중간발표 하는 이정우 체육국장. [연합]

김 회장과 그가 임명한 공모사업추진위원장(태안군배드민턴협회장)은 지난해 후원사로부터 셔틀콕 등 사업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면서 협회 직원들 몰래 후원사에 구매 금액의 30%에 해당하는 물품을 추가 후원 받기로 구두 계약을 맺은 것도 확인됐다. 당시 그는 1억5000만원 상당 물품을 지급 받아 지역별 물량을 임의로 배정했다.

1심에서 아동학대 판결이 난 지도자를 단순히 항소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추가 조사나 검토없이 자격 정지를 해제했으며 국가대표 선수단에게 지급되어야 할 의류, 라켓, 가방 등 용품을 대의원, 이사, 공모사업추진위원회, 협회 원로 등에게 지급했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후원사로부터 지급받은 국가대표 후원 물품을 전산 시스템이 아닌 수기로 관리하고 접수해 연도별 입출고 물품의 수량 차이가 수천개에 달한다.

문체부는 나머지 선수단의 의견도 수렴해 9월 말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안세영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방수현 이후 28년 만에 여자 단식 종목에서 금맥을 캐며 한국 배드민턴의 도약을 알렸다. 하지만 금메달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 안세영은 그동안 배드민턴협회를 향해 참아왔던 작심 발언을 내놓아 충격을 안겼다. 협회의 안일한 선수 부상 관리와 더불어 무리한 대회 참가 지시, 트레이너 채용, 단식과 복식 훈련 방식, 체력 운동 프로그램 등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