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레코드 시부야점에서 본 일본의 한류 현주소
한때 매장 1층 장악했던 K-팝 코너 4층 구석자리로 밀려나 썰렁 주간 앨범 판매순위 차트서도 사라져
1990년대이후 몰락한 홍콩영화처럼 획일화된 아이돌음악 추락 위기에 “콘텐츠 다양화 외엔 출구가 없다”
[도쿄=정진영 기자] 지난달 21일 오전, 일본의 대형 음반매장 타워레코드 도쿄 시부야점. 그룹 2PM이 일본 현지 가수에게도 ‘꿈의 무대’인 도쿄돔 공연을 전석 매진시킨 이날, 일본 내 한류의 전진기지였던 이 매장 1층에서 가장 크게 홍보되고 있던 아티스트는 일본의 5인조 걸그룹 모모이로클로버Z였다. 10년 만에 새 앨범 ‘더넥스트데이(The Next Day)’를 발표하며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영국의 노장 데이비드 보위의 포스터도 눈에 띄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매장 1층 전체가 K-팝 앨범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이 매장에서 K-팝 코너는 4층 내 일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주간 앨범 판매순위 차트에도 K-팝 스타는 없었다. DVD 차트 상위권에 지드래곤과 빅뱅 등의 이름이 보였지만 기타 차트에서 K-팝 스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현지에서 체감한 K-팝의 인기는 생각보다 싸늘했다.
한때 한국 드라마 홍보 현수막이 줄이어 매달려 있었던 TBS(도쿄방송) 본사 앞에도 한류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지난해 한류의 지속 기간에 대해 9개국 현지인 3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가 ‘4년 이내’라고 답변했다. 다소 충격적인 결과였다.
K-팝 한류의 가장 큰 물줄기는 아이돌 그룹 중심의 세련된 댄스음악이다. 그러나 한류의 원천인 국내 음악시장에서도 이들의 음악은 예전과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의 5월 셋째주(5월 13~19일) 차트에 이름을 올린 아이돌은 걸그룹 포미닛과 시크릿 둘 뿐이었다.
대중음악 공인음악 차트인 가온차트를 만드는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의 최광호 사무국장은 “차트 집계 이래 아이돌이 이렇게 차트에서 힘을 못 쓰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이 같은 부진의 원인은 획일화한 아이돌 음악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아시아 지역을 넘어 전 세계를 풍미했던 홍콩 영화가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기록적인 수준의 몰락의 길을 걸은 이유는 무분별한 자기복제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과거 홍콩 영화와 마찬가지로 자기복제에 따른 콘텐츠의 획일화가 현재 K-팝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꼽았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아이돌 그룹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와 조용필 등 기존 가수의 활약은 아이돌의 정형화한 스타일에 질린 대중의 반작용”이라고 지적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역시 “아이돌의 과도한 자기복제는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며 “여기에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신인 아이돌의 무분별한 일본 진출도 위기를 부추겼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원론적이지만 콘텐츠 다양화를 위한 자구노력 외엔 해결책이 없다는 데 입을 모았다.
서 평론가는 “K-팝의 해외 진출은 대형기획사가 음악의 질적인 수준을 높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데, 이들이 더이상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안주하는 데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에프엑스나 샤이니 등 몇몇 그룹이 기존의 아이돌 음악과 비교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음악적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콘텐츠의 다양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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